오피니언 중앙시평

도전하는 아이로 키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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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54년 5월 6일. 로저 배니스터는 1마일 경주의 출발선에 섰다.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기 위해서였다. 1마일은 1760야드로 약 1.609㎞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1마일을 4분 안에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면 폐와 심장이 파열하고 인대가 끊어진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다. 하지만 옥스퍼드 의대를 다니던 아마추어 육상선수 배니스터는 그 통념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본래 배니스터는 52년 헬싱키 올림픽 1500m 경주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하지만 그는 4위에 머물고 말았다. 박수갈채 대신 비난의 화살이 빗발쳤다. 배니스터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길 바랐다. 하지만 다음 올림픽까지는 4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그가 택한 도전이 바로 마(魔)의 1마일 4분 벽을 깨는 것이었다.

1마일을 4분 안에 뛰기 위해 배니스터는 4분의 1마일 트랙을 60초에 한 바퀴씩 돌아야만 했다.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네 바퀴를 돌아 마침내 결승점에 들어온 배니스터는 격심한 고통 속에 의식을 잃다시피 쓰러졌다. 잠시 동안 그의 눈에는 모든 사물이 흑백으로만 비쳤다. 산소 부족으로 온몸의 기관이 작동을 멈추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배니스터는 스스로 어떤 장벽을 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1마일을 3분59초4로 주파해 낸 것이다. 인간능력의 한계로 여겨졌던 '1마일 4분 벽'을 마침내 돌파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배니스터가 마의 1마일 4분 벽을 깨고 난 뒤 한 달 만에 무려 10명의 선수가 다시 1마일 4분 벽을 돌파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 년 후엔 37명이 그 4분 벽을 넘었고, 2년 후에는 그 숫자가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50년대 중반부터 인류가 빨라지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다. 결코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장벽을 배니스터라는 한 젊은이가 허물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따라서 허물었던 것이다. 한 젊은이의 통념을 깬 도전이 사람들의 마음을 "할 수 없어, 안 돼"에서 "할 수 있어, 돼!"로 움직이게 했고 그만큼 세상을 바꾼 것이다.

결국 도전이 세상을 바꾼다. 도전은 내 안의 숨은 위대함을 깨우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잠재 역량까지 일깨우는 삶의 각성제다. 도전 없이는 성장도 발전도 없다. 물론 도전은 때로 실패와 좌절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 실패와 좌절이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 뿐만 아니라 결국 쉼없이 도전하는 사람에게 뒤처지고 만다.

도전하는 사람이 이기듯 도전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도전하는 기업이 크고 도전하는 나라가 부강해진다. 그래서 도전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도전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도전을 상실했다. 도전의 가치를 망각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여간해선 도전하지 않는다. 도전이라고 해봐야 기껏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도전 골든벨'을 시청하는 것이 전부인 듯싶다. 입시공부가 도전을 삼켜버렸다. 부모의 잔소리가 도전의 씨앗을 으깨어 버렸다. 그 결과 도전을 겁내는 아이들만 양산하고 말았다. 이러다가 대한민국 사람들의 유전자에서 도전의 씨가 말라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에게 도전을 가르치자. 집과 학교, 집과 학원만을 오가며 옆에 있는 친구만 이기라고 가르치지 말고 더 큰 목표, 더 큰 방향을 바라보며 어려서부터 도전하며 나아가게 가르치자. 그렇게 가르치려면 어른부터 솔선하자. 도전의 가치를 일깨우고 진작시키자. 도전하는 사람에게 손뼉치고 격려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그런 가정.학교.기업.사회.국가를 만들자. 도전하는 국민이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