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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구토’는 왜 어려운가 … 고전소설 통째 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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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전 계룡문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서 모임 '진격의 독서단'. 많이 읽는 것보다 한 권이라도 깊이 읽는 정독을 지향한다.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단장 역할을 하는 김운하씨.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대전 계룡문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서 모임 '진격의 독서단'. 많이 읽는 것보다 한 권이라도 깊이 읽는 정독을 지향한다.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단장 역할을 하는 김운하씨.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책 읽는 마을 7-진격의 독서단

인문학 저술가 김운하씨 이끌어 #대전 지역서점과 손잡고 세미나

"다독보다 정독!" 지난해 초 결성된 대전의 책 읽는 모임 '진격의 독서단'의 모토다. 양보다 질. 넓이보다 깊이. 한 권을 읽더라도 속속들이 읽자는 거다. '깨알독서'다. 독서단의 사실상 단장인 소설가이자 인문학 저술가 김운하(53)씨의 독서철학에 따른 것이다. 김씨는 "초보 독자라면 교양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다독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착역은 정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깊이 있는 사고와 지식을 얻으려면 정독과 반복독서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방침에 따라 독서단은 무게감 있는 고전급 소설을 '깊이 있게' 읽어왔다. 한 달에 한 권씩, 독서단이 지금까지 읽은 책 목록에는 얼마 전 타계한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아름다운 소설집 『녹턴』이 포함돼 있다. 남성의 낭만을 부추기는 『그리스인 조르바』, 영국의 대가 줄리언 반스의 인기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보인다.

 비상한 각오로 진격해온 회원들은 최근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12일 대전의 대표적인 향토 서점인 계룡문고 세미나실. 조금은 긴장된 표정의 회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난해하기로 악명높은 프랑스의 실존 철학자 사르트르의 대표작 『구토』가 이달의 독서 과제다. 실은 6월부터 읽었다. 소설이 워낙 어려워 이례적으로 두 달에 걸쳐 읽기로 했다.
 김 단장이 말문을 열었다. "실존주의 소설은 어려울까 봐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분도 있는데, 사실은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같이 읽는 거잖아요. 같이 읽으면 오독의 가능성도 줄어들고, 이런 작품일수록 어떻게 읽었는지 토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독서 토론은 매달 두 번째 주 목요일 저녁 두 시간 동안 진행된다. 한 시간은 김 단장의 강연, 나머지는 문답, 자유토론이다. 김 단장은 대학에서 언론학을(서울대 신문학과 84학번), 미국 뉴욕대에서 철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설과 인문학 서적을 광범위하게 읽었다. 이날 강연에서도 김 단장의 그런 내공이 빛을 발했다.
 "소설의 주인공 로캉탱이 바닷가에서 미끌미끌한 조약돌을 만질 때 구역질을 하잖아요. 왜 구토 증세를 느끼느냐,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이해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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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단장은 시적인 문장들이지만 파편화된 의식의 흐름으로 가득한 소설의 핵심 메시지, 실존주의 철학의 계보,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주요 개념인 즉자존재와 대자존재 등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실존주의에 대해 어렴풋하던 뭔가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열심당원 조인환(49)씨가 중간에 치고 들어온다.
 "선생님, 소설에서 독학자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이 구축한 세계 속에 들어가서 그저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지는데, 결국 주인공 로캉탱이 자신을 비춰 반성에 이르게 하는 거울 같은 역할을 독학자가 하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소설의 기법 중 '발견'이 있는데, 로캉탱은 독학자를 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 거죠."
 독서단은 회비가 없다. 토론 후 뒤풀이 커피값만 각자 계산한다. 다만 어려운 책일수록 여러 번 읽는 게 권장된다. 『구토』의 경우 유튜브 등 실존주의 이해에 도움 되는 자료를 가능한 한 많이 읽고 와야 한다.

 공들여 읽는 만큼 만족도가 높은 듯했다. 통신회사에 다니는 진홍준(39)씨는 "어렵지만 한 달에 한 권이니까요. 깊이 있는 책들을 읽고 토론하니까 재미도 붙고 삶도 즐거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영어학원 원장인 홍성미(53)씨는 "단순히 돈 벌 목적으로 학원을 운영한다고 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행복감이나 자긍심을 갖는데 독서활동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독서단의 또 다른 자랑은 향토서점과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계룡문고는 공간을 내주고 회원들은 읽을 책들을 가급적 계룡문고에서 구입한다. 상생이다.
 진홍준씨는 "대전 최대의 '백북스'라는 북클럽이 있는데, 그에 버금가는 독서모임으로 키워나가고 싶다"고 했다.
대전=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책 읽는 마을'은 다음번부터 격주 토요일 중앙선데이 '책 속으로'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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