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흥미유발 발상이 유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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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드라마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군 정보기관의 테러를 당했던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사회부장의 실명을 사용한 M-TV 일요 가정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이 큰 물의를 빚고 있다.
『한 지붕 세 가족』의 지난 16일 1백 회 방송은 「이웃집 남자」편을 내보내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아냥을 당하는 극중 주인공으로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부장과 동명인 「오홍근 부장」을 설정했다.
물론 그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도입부의 두 차례 정도였고 극중대화 도중 동명이인이라고 분명히 밝히기는 했지만 「오 부장」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다른 등장인물들이 『많이 들어본 이름』, 『신문에서 읽은 것 같네. 군인하고 관계 있는 분 아닌가』이라고 해 테러사건의 오 부장을 연상시켰다.
이같이 모든 시청자들에게 기억에도 생생한 언론인 테러사건의 피해자로 알려져 있는 오 부장을 연상케 함으로써 자연히 실명의 오 부장의 행동과 성격에 관심을 갖도록 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드라마를 통해 표현된 극중 오부장의 성격이다. 그는 이웃집 생일파티를 안면방해로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신경질적이며 그의 집은 『동네 분위기 다 흐려놓는 집』으로 묘사됐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심장병을 앓는 오부 장이 동네 약수터에서 쓰러져 입원하면서 동네사람들이 문병 오는 것을 계기로 화해하게 된다는 다소 교훈적인 줄거리로 끝을 맺었다.
따라서 전체적인 내용과 극중 주인공의 성격은 실제인물 오 부장과 아무런 필연적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은연중 시청자들에게 실제인물 오 부장을 연상케 했다.
실제인물 오 부장의 이름을 끌어들인 것은 작품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기보다는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겠다는 얄팍한 의도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게다가 동명이인이라고 전제했기 때문에 실제의 인물과는 무관하다는 형식논리도 시청자가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실제인물 오 부장도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받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또 드라마 제작 간부와 담당 연출자인 정인씨는 대본을 사전에 검토하는 과정에서 별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힘으로써 드라마 제작에 임하는 연출진의 무신경이 새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MBC 측은 18일 이 문제와 관련해 오 부장에게 공식 사과했고 정인 PD와 작가 김운경씨도 오 부장을 찾아가 본의 아니게 명예를 훼손시킨 데 대해 정중히 사과했다.
MBC 측은 이와 함께 모든 시청자들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곧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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