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야” 시험문제 빼낸 학부모, 취약 과목 간추려 아들에 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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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시험지 유출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수사관이 사건이 발생한 광주 한 고등학교에서 챙겨온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고3 시험지 유출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수사관이 사건이 발생한 광주 한 고등학교에서 챙겨온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고3 수험생인 아들의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빼낸 학부모가 취약 과목만 간추려 학습자료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광주 한 고등학교 학부모 A(52·여)씨는 외부 도움 없이 혼자 시험문제를 편집해서 아들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학교 행정실장(58)과 함께 올해 1학기 고3 이과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를 통째로 빼내 미적분·기하와 벡터·생명과학Ⅱ 등 아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을 중심으로 난도가 높은 문제만 발췌했다. 그리고 A4용지 4장 분량의 학습자료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교육청과 해당 학교는 사건을 인지한 초기, 일부 과목의 시험문제만 유출된 것으로 파악했었다.

A씨는 이 학습자료를 ‘족보’(기출문제 복원자료)라면서 아들에게 건넸다. 답안은 따로 표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일각에서 학생의 과외교사가 개입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증거물 분석 결과 이러한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A씨가 고학력이고 평소 아들의 학업에 관심이 많았으며 ‘족보’ 분량도 짤막해 혼자서 시험문제를 편집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A씨가 자녀 교육에 관심 많은 학부모라 해도 고3 수험생의 문제를 아들 실력에 맞춰 족집게처럼 편집하는 데 과외교사 등 외부인 조력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종결할 때까지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시험문제 유출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았는지 학교 윗선 개입 여부 등 사건 전말을 파악하고 나서 A씨와 행정실장에 대해 구속 여부 등 신병처리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한편, 현재 내신 시험문제 유출을 공모하고 실행한 학부모 A씨와 학교 행정실장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이들이 돈거래를 했다면 뇌물수수 등 혐의가 추가로 적용되고, 시험문제 유출에 개입한 학교 윗선이 드러나면 그 또한 처벌 대상자가 된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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