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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 유죄…法 “양심이 확인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사진 국제엠네스티]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사진 국제엠네스티]

개인의 양심을 사유로 입영을 거부한 20대 남성이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일선 법원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7단독 조상민 판사는 17일 병역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모(29)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조 판사는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며 이날 오씨를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오씨는 ‘폭력을 확대ㆍ재생산하는 군대를 거부하고 평화의 확산을 추구한다’는 정치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오씨는 소견서를 통해 ”병역을 거부하기 위해 양심을 들먹이는 것이 아니다”라며 “전쟁 없는 세상은 가능하며 이를 위해 평화에 힘써야 한다고 믿게 됐다”면서 입영 거부 사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대학 입학 이후 깨달은 5ㆍ18 광주민주항쟁의 진실과 전쟁터로 파병되는 한국의 군대, 여전히 성소수자를 처벌하는 군형법, 군대 내 부조리 등을 보면서 신념을 구축했다”고 소명했다. 이어 “저와 제 선배, 동료들은 20여년 동안 대체복무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헌법이 요구하는 국방의 의무는 비군사적인 업무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주장과 같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라는 점과 더불어 세월호 관련 집회 등에서 발생한 오씨의 폭력행위처벌법 등 전과를 토대로 “오씨가 폭력에 반대한다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또 재판부는 “오씨는 자신이 정치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수사기관에서부터 입영하지 않을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며 “앞으로도 자발적인 병역의무 이행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오씨의 재판을 지원해 온 ‘청년정치공동체 너머’는 이날 1심 판결에 대해 “오씨는 지난달 19일 재판에서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기 위해 재판의 추정과 연기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면서 “헌재의 판결에도 유죄가 선고됐다”고 규탄했다. 이어 “오씨를 비롯한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무죄를 주장한다”면서 “오씨에 대한 항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6일에는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다가 항소심에서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중이던 김모(23)씨가 별도 신청 없이 대법원의 직권 보석허가로 풀려나기도 했다.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종교적 병역거부 사건은 205건인데, 이중 법정구속된 피고인이 김씨뿐이라, 이를 대법원이 부담으로 여겼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 공개변론이 두 달 안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재판부가 불필요한 논란을 직접 종식하려고 직권 보석허가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오는 8월 30일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고 2~4개월 내 판결을 선고한다. 14년 만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이뤄지는 만큼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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