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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칼럼

독수리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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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독수리에 대한 이런 일화가 있다. 독수리가 70까지 살려면 40살쯤에 변신을 위한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40년쯤 되면 독수리의 부리는 굽어져 가슴 쪽으로 파고들고 발톱 역시 굽어져 먹이 사냥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때 독수리는 결단을 해야 한다. 1년쯤 더 살다가 죽든지, 아니면 고통스럽지만 변신해 30년을 더 살 것인지…. 결단한 독수리는 절벽 꼭대기에 올라가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으깨 부리를 뽑는다. 그 자리에 날카로운 새 부리가 돋아나면 그는 그 부리로 휘어져 못 쓰게 된 발톱을 뽑는다. 빠진 발톱 자리에 새 발톱이 돋아나고, 새 부리와 새 발톱을 가진 독수리는 제2의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동서 경쟁에서 소련이 왜 미국에 패배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소련체제가 갖지 못한 '창조적 파괴'의 힘을 미국은 갖고 있었다. 소련도 모든 가구에 아파트를 지어주고 1가족 1마이카를 꿈꿀 정도로 한때는 잘나가는 듯 보였다. 자동차 공장도 세웠다. 그러나 1950년대의 자동차나 70년대의 자동차나 그게 그거였다. 반면 미국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장은 폐기하고 새 기술을 도입해 설비를 다시 했다. 같은 양의 자원으로 한쪽은 최신의 자동차를 뽑아내고 다른 쪽은 20년 전의 자동차를 만든다면 누가 이기겠는가. 이런 예는 산업 전반에 나타났다. 소련은 '세계 최고의 면화'라고 인정받는 우즈베크 목화를 가지고 세계 최하의 셔츠를 만들었다. 창조적 파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힘은 바로 경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프지만, 아깝지만 더 나은 것을 향해 옛것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변화를 외친다. 그러나 변화는 누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적당히 먹고살 만할 때 변화하기가 제일 어렵다. 보통사람들은 어느 정도 안정을 누리게 되면 그 위치에 만족한다. 개인의 그런 삶의 태도는 때로 칭송을 받기도 한다. '독수리처럼 생발톱을 뽑아가며 오래 살아 무엇하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이나 국가는 다르다. 기업은 "이 정도면 됐지"라고 말할 때가 바로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때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배고픔을 면하고 먹고살 만해지면, 근로의식이 저하되고 사회기강도 해이해진다. 그때부터 국가는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한 일생으로 끝나는 일이지만 국가는 그렇지 않다. 과거 전쟁에서 패해 나라가 망하면 그 국민은 모두 노예로 끌려가고 딸과 아내들은 적국의 노리개가 되었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였다.

세계에서 미국 유학을 제일 많이 보내는 나라가 한국으로 집계됐다. 우리보다 20배 이상 인구가 많은 중국.인도보다, 10배 국력이 강한 일본보다 우리가 더 보낸다. 물론 이들 유학생이 나중에는 우리의 국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통계는 한국 교육의 실상을 말해준다. 우리 교육제도가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출혈을 해서라도 보내는 것이다. 미국 변호사를 앞으로는 변호사라 부르지 않고 미국법 자문사로 부르도록 법을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국내 변호사들이 변호사라는 자기들만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외국 변호사를 배제시키려는 꼼수다. 이러니 교육.법률서비스가 어떻게 경쟁력을 가지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겠는가.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조건을 파괴하지 않고는 우리는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길목에 다다랐다. 그러나 스스로 파괴하는 것은 생발톱 뽑는 것같이 힘든 일이다. 왜 안전지대를 버리고 위험지대로 가려 하는가. 이러다가 더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거나 경제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미 FTA가 우리나라 전반에 창조적 파괴의 힘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효율성이 가장 높은 나라, 경쟁력이 가장 강한 나라에 스스로를 노출함으로써 우리는 기존의 '그럭저럭'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파괴로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사태 때 우리는 수동적으로 파괴당했다. 그러나 이번은 스스로의 결단으로, 더 큰 꿈을 위해 창조적으로 파괴하려는 것이다. 마치 독수리처럼….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