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후④|높아진 시민당직 정착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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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가장 신선했던 충격은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이 사회구석구석에 넓게 퍼져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자가용 홀·짝 운행을 실시하자시민 94%가 참여, 악명 높던(?) 교통난을 말끔히 해소했고 노사도 서로 자제, 대립보다는 협조가 최상이라는 교훈을 터득케 했다.
「시민정신」은 학생들의 과격시위까지도 자제토록하는 큰 힘을 발휘,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시의는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을 학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부터 정부당국이 모든 분야에서 민주화를 적극추진 하는 것만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맺도록 해준「시민정신」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하고있다.

<정부서도 보답을>시민의식
서울올림픽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어왔던 시민의식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완벽에 가까운 자가용 격일제 운행,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 노력, 그리고 경기장에서의 훌륭한 관전매너와. 높은 질서의식 등은 그동안 숱한 좌절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를 비하해온 우리 민족사에 중대한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세계인들을 우리 안방으로 불러들여 우리의 잘나고 못난 점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그들과 맞부딪쳐 그 허·실상을 가려낼 수 있었던 만큼 올림픽이후 민족자존에 바탕한 시민의식의 성숙은 급속도로 우리사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사회전반의 민주화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승용차 짝·홀수 운행제는 시합첫날 전체대상차량 24만8천 여대중 위반차량은 3백여 대에 불과한등 올림픽기간 중 무려 94%가 참여,『앞으로 국가적중요행사가 있을 때면 승용차 짝·홀수제를 시행하겠다』고 정부당국이 발표할 정도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경기장 안내 일에서부터 선수촌 숙소 청소·설겆이까지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고 구슬땀을 흘려온 2만6천여명의 자원 봉사요원들도 자율적인 헌신의「시민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경기장마다 좌석을 곽 메워 강대국과 약소국 동서를 초월한 응원을 퍼준 우리관중들.
새벽부터 경기장입구 매표구에 나가 3∼4시간씩 줄을서 예비입장권을 구입하는 시민들을 지켜본 어느 정치인은『이젠 정치하기도 힘들어 졌다』며 시민 등의 질서의식을 두려워했다.
물론 이처럼 성숙한 시민정신이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은 최근우리 사회가 겪어온 민주화 분위기에 힘임은 바 클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당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등 제 분야에서 민주화를 더욱더 적극 추진, 이번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맺을 수 있도록 해준 국민들에게 보답해야한다.
앞으로 모든 시민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우리의 결점을 하루빨리 고쳐나가는 일이다.
우리의 시민정신은 더욱 성숙되어야 하며 따라서 삶의 방식이 민주적이고 시민적이어야 할 것이다.<최우직기자>

<양보경험 살려야>노동
『우리가 쟁의를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올림픽이 다가온 만큼 자제하는 뜻에서 회사내 농성은 풀고 조합원들이 집에서 대기토록 하는게 어떻겠습니까』올림픽 개막직전인 지난달13일 오후 인천시가좌동 한국안전유리(대표 안학수)노조회의실. 배상익조합장(43)이 대의원회의에서 뜻밖의 제안을 하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적 축제에 우리사정만 내세워 분위기를 흐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14명의 대의원들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노조측은 다음날부터 조합원들을 집에 대기시키고 대표만 나와 회사와 협상을 벌였다.
노조가 8월30일 쟁의에 돌입한 후 회사측이 9월6일 직장폐쇄신고를 한 상황이어서 이날의 결정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1개월여의 쟁의로 자동차유리생산이 중단되는 사태는 겪었지만 노사양측은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10월3일 분규를 타결, 화합의 악수를 나누었다.
서울지하철노조도 9월초 조합원투표에서 파업결의를 했으나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올림픽을 의식, 올림픽 뒤로 유보하는 결단을 내린 끝에 5일 분규를 타결 지어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노조도 농성 3일째 안 9월16일 노동부 등의 중재를 받아들여 올림픽후 교섭을 결정, 농성을 푸는 자세를 보였다.
이처럼 국가대사를 앞둔 노사양측의 자제로 9월초 80여건이던 분규가 9월20일쯤부터 40여건으로 줄었고 9월26일과 28일에는 신규건수가 하나도 없어 금년 들어 처음으로 무분규 일을 기록했다.
이같이 올림픽기간 중 나타난 노사의 성숙된 자세는 앞으로의 노동문제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림픽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양측이 서로「룰」과 법 절차를 지키는 성숙된 의식이 정착돼나갈 것이라는 희망이다.
노동부 박길상 노사협의과장은『올림픽기간 중 타율적인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자제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인상적이었다』며『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사용주의 노조탄압·구사대동원이나 노조의 불법단체 행동 등 장애요소가 해소되어 노사협상의 관행이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구권의 닫힌 문을 열게 한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등 미수교국·개도국에 대한 직업훈련서비스제공, 소련 시베리아등 인력진출지역의 다변화, 국제노동기구(lLO)가입실현 등 국제노동외교 역시 활성화될 전망이다. <김일기자>

<정치권 성과 영향>학생운동
각 대학 총학생회는 올림픽에 앞서『북한이 참가하지 않는 서울올림픽은 분단을 영구화할 뿐』이라고 주장, 올림픽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으나 국민일반의 여론악화를 우려, 올림픽기간 중 시위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었다.
그러나 일부 강경파학생들은 이를「투항수의」「패배주의」로 공격했었다.
올림픽기간 중 중단된 시위는 학생들의 일시적 자제에 불과하다는 것이 5일 연세대 서총련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의 기자회견에서 밝혀졌다.
운동권 학생들은 상반기 활동을 통일 운동에 주안점을 두었던데 비해 하반기에는 ▲광주항쟁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5공 비리규명과 전두환·이순자씨 부부 구속수사 등에 초점을 맞추어「학생의 날」인 오는11월3일을 전후해서 대규모 가두집회와 시위를 벌일 방침이다.
학생들은 광주항쟁진상규명 등은 이른바「투쟁의 핵심」으로 이들 이슈를 통해 국민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어냄으로써 반미자주화·6공화국의 정통성부정에 이르게 한다는 계획이다.
학생들은 최근 국민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반미감정에 편승, 이를 우리나라의 대미종속성과 연결 지으려고 노력하고있으며 이를 계기로 한미행정협정의 전면개정 등을 요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학생들은 이 같은 계획을 기층에 확대해간다는 계산아래 이미 지난달 30일부터 서울대·연대등 서울지역대학생 5천여 명이 전남함평등 전국농촌지역에 3∼4일씩「추수농촌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서총련소속학생들은 5일 투쟁방침선언 기자회견에 이어 7일 서울대에서 대규모 연합집회를 갖고 올림픽투쟁결산과 하반기계획 등에 대한「구국투쟁선언」을 할 예정이다.
학생들은 또「전두환씨 부부체포조」를 편성해 연희동사저습격도 계획중이라는 것.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각 대학 중간고사기간을 의식한 운동권학생들은 이 달 초부터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되, 경우에 따라서는 중간고사 거부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운동권학생들은 올림픽이전의 좌·우익논쟁과 몇몇 우익단체의 결성,「주체사상」파동 등에 주목, 『올림픽이후 지난 86아시안게임 뒤와 마찬가지로 운동권에 대한 대 탄압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전대협의장 오군의 연행·구속에 대해 전대협 측이 지난3일「전국의 백만청년학도에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오군의 구속은 올림픽 후 벌어진 민주애국세력에 대한 초토화작전의 서곡』이라고 주장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결국 올림픽 뒤 정치권의 5공 비리조사활동 등이 얼마만큼 실질적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운동권학생들의 목소리 높낮이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 이우범교수(사회학)는 이에 대해『우동권등 사회각계에서 표출되는 문제제기는 마취에서 깨어난 뒤의 통증처럼 어차피 우리사회가 겪어야할 과정』이라고 진단하고『정치권에서 한층 전향적인 태도로 문제를 앞서 물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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