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테러 … 지하철서도 음식 섭취 금지해야” 민원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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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22일 오후 7시 30분쯤 방배역을 지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안. ‘어휴. 이게 무슨 냄새야.’ 승객 A씨는 황급히 코를 막았다. 음식 냄새가 풍기는 곳에선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나란히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밀폐된 열차 안에서 꼼짝없이 음식 냄새를 맡아야 했던 A씨는 속이 울렁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일부 승객도 햄버거를 먹는 두 남녀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A씨는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콜센터(1577-1234)를 통해 민원을 접수했다. 그는 “창문도 못 여는 열차 안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기본 에티켓 아니냐”고 토로했다.

상반기 불편접수 작년 1년치 넘어 #규제요구 청와대 청원도 5개 등장 #대만·싱가포르선 수십만 원 벌금 #교통공사 회의 끝 “금지 불가” 결론 #승객들 “포스터라도 붙여 계도를”

[그래픽=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그래픽=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지하철 열차 안 음식 섭취’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콜센터에 접수된 ‘열차 안 음식 섭취 민원 건수’는 2016년 233건에서 지난해 572건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올해 역시 지난해 건수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올 1~6월 상반기 민원 건수만 지난 한 해보다 많은 574건이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들어온 민원을 살펴보니 일부 시민이 열차 안에서 먹는 음식은 다양했다. 도시락·피자·치킨·토스트·햄버거 등 이른바 ‘후각 테러’를 하는 음식부터 컵라면·아이스크림·커피·술과 같이 쏟거나 흐를 수 있는 음식도 있었다.

‘지하철 안 음식 반입·섭취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일까지 ‘지하철 안 음식 섭취를 규제해 달라’는 청원글이 5개 올라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지하철 음식 때문에 겪은 불쾌감을 토로하며 ‘열차 안에 음식을 못 들고 타게 해야 한다’거나 ‘열차 안에서 먹으면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들이 적지 않다. 대만과 싱가포르에선 지하철에서 음식을 먹으면 각각 최대 약 28만원과 약 4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버스에서는 이미 올 1월 4일부터 버스 운전사가 음식을 먹는 승객을 하차시킬 수 있다. 또 버스 안에서 먹을 수 있는 포장 되어 있지 않은 음식은 갖고 탈 수 없다. 지난해 말 시 의회에서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운행 기준에 관한 조례’가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버스에서 음식 섭취가 금지된 이후 ‘지하철에서도 버스처럼 음식을 못 먹게 해달라’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버스 음식 반입·섭취 금지 진행 과정은

서울 시내버스 음식 반입·섭취 금지 진행 과정은

최근 서울교통공사·인천교통공사 등 수도권의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참석한 협의회에서는 이 문제가 다뤄졌다. 지하철 이용 시민들의 불편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회의 결과 “지하철의 음식 반입·섭취 금지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운전사가 승객을 바로 볼 수 있는 버스와 달리 지하철 안 음식은 규제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여객운송약관’에 따라 ‘불결·악취로 다른 승객에게 불쾌감을 줄 우려가 있는 물건은 휴대금지’다. 하지만 음식이 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버스 안 음식 섭취 금지’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 3월부터 버스와 정류장에 테이크아웃 음식 ‘탑승 금지’를 알리는 픽토그램이 붙은 이후 버스에서 먹을 음식을 들고 타는 승객이 이전보다 80~90% 정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하루 평균 이용 승객이 약 777만명인 서울 지하철에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1~8호선 열차 안과 승강장 등의 모니터에 ‘열차 안 음식 섭취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홍보 영상을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니터가 성인의 키보다 높은 위치에 달려있어 시민들의 시선을 잘 끌지 못한다. 직장인 전혜미(29)씨는 “최소한 잘 보이는 곳에 음식 섭취 자제를 알리는 픽토그램이나 캠페인 포스터를 붙이는 식으로 시민 계도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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