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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복규의 의료와 세상

의사 폭행이 애통함의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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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우리 형님 죽으면 너도 죽어!”

영화에나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실제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듣고 있는 말이다. 대한응급의학회의 조사에 의하면 응급실에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언을 들은 의사는 80% 이상, 폭행을 경험한 의사는 50%,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의사는 40% 가까이 되었다.

지난 1일에도 익산의 한 응급실에서 의사가 술 취한 환자에게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고 치아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가해자는 감옥을 다녀온 후 피해 의사를 꼭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느 환자단체 대표라는 분은 “의사의 따귀를 때리고 싶은 환자가 90% 이상”이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의료와 세상 7/9

의료와 세상 7/9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우리나라는 각종 건강지표로 볼 때 최고 수준의 건강상태를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누리고 있는데도 환자와 의사 관계는 최악을 달리고 있다. 진료를 받다 보면 의사의 태도나 말투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 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으로 분초를 다투며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응급실 등에서 의료진을 폭행하는 것은 다른 환자에 대한 진료를 방해하고, 결국 전체적인 환자의 안전에도 커다란 위협이 된다.

의사도 사람이고 현대 의학은 여전히 불완전하며 모든 의료는 한정된 자원을 기반으로 수행될 수밖에 없다.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높은 것은 어찌 보면 의료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음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의료는 없다. 무능하거나 나태하여 실수를 저지른 의료인은 분명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의료계와 정부는 그러한 일을 줄여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처벌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로 매년 적지 않은 의사들이 면허 정지 등의 처분을 받고 있다.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사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을뿐더러 의료에 기대고 있는 공공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만큼 영화나 드라마에서 의사의 멱살을 잡거나 폭행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곳도 드물 것이다. 이를 무슨 애통함의 표현이나 정의의 실현이라 생각한다면 갈 길은 멀다. 안전한 (근무) 환경이 좋은 진료를 보장한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