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무역전쟁으로 한국 수출 31조원 감소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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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에 돌입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무역전쟁에 돌입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340억달러(37조9800억원) 규모의 중국 수입 제품에 고율 관세부과를 강행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이 미국·중국 무역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양국에 대한 한국 경제 의존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기로 한 중국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24.8%·홍콩 포함시 31.6%)이 가장 높은 국가다. 또 중국이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한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12%·2위)이 높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양국 무역의존도는 68.8%에 달한다.

물론 양국이 서로간 수입제품에 취하는 조치인 만큼, 한국이 소비재 형태로 미국·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은 이번 무역재제와 무관하다. 문제는 중간재 수출이다. 예컨대 중국이 미국에 TV를 수출한다고 보자. 이때 TV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한국산이라면 한국은 이번 무역전쟁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특히 한국은 중국에 수출하는 중간재 무역 비중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78.9%(1121억달러·125조2200억원)였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미·중 통상마찰의 실질적 피해자는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이라며 “한국도 전자부품·기계부품 기업의 대중국 수출 둔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을 1단계(818개품목·340억달러규모)와 2단계(284개품목·160억달러규모)로 구분해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번 1단계 무역전쟁으로 2억3700만달러(2647억3000만원) 규모의 한국 수출량 감소를 예상했다.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이와 관련이 있는 대중수출이 1억9000만달러(2122억3000만원) 줄고, 이에 맞서 중국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매기면 대미 수출이 4700만달러(525억원) 감소한다는 것이다.

2단계 조치도 시행할 경우 한국 기업 피해는 더 커진다. 총수출이 3억3400만달러(3730억8000만원)가 감소하면서 국내생산 규모가 8억500만달러(8991억9000만원) 줄어들 수 있다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분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직접적인 수출액만 따지면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자본재와 같은 간접 수출까지 고려하면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 감소폭은 최대 282억6000만달러(31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전쟁. [중앙포토]

미중 무역전쟁. [중앙포토]

반면 양국간 분쟁인 만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국서 중국에 수출하는 중간재 수출품과, 미국서 제재하는 중국산 수입품목이 그다지 겹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미국의 대중 재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한국의 중국 수출 제품 규모는 2억달러(약 2200억원) 내외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중국산 1·2단계 제재 품목(1102개) 중 40.7%(449개)가 일반기계지만,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40.7%는 전기·전자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 성장률 둔화는 결과적으로 한국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조철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심리 위축 등으로 중국 경제 성장이 멈추면 중국에 소비재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무역전쟁을 계기로 세계 각국이 동시다발적으로 관세를 올리는 상황도 문제다.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 수입제품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각국이 국제교역을 줄이고 내수나 인근 국가에서 제품을 조달하는 형식으로 무역 구조가 바뀌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같은 국가는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는다. 실제로 싱가포르 DBS은행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는 국가로 말레이시아·대만·싱가포르와 함께 한국을 꼽으면서 “한국 올해 경제성장률은 기존 2.9%에서 2.5%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 무역 규모가 축소되는 반면 일부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창출될 수도 있다. 조철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경쟁이 심화하면 중국은 어쩔 수 없이 자국 시장을 좀 더 개방하는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은 이를 중국 시장 진출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 1일 자로 식품 등 소비재(15.7%→6.9%)·자동차(25%→15%)·차량부품(8~25%→6%) 관세를 일괄적으로 인하했다. 미국 수출 감소로 인한 내수 시장 위축을 우려한 조치다.

미국 시장에서도 사업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중국 제품의 대체품을 내놓으면 한국 기업은 미국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중 양국의 무역전쟁이 당분간 계속될 예정인 만큼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왔다. 조철 선임연구위원은 “중간재보다 소비재 수요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확대하고, 인도·동남아시아 등 성장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수출 다변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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