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4번 피한 조양호 일가…'영장청구 남발' 논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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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남부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남부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조양호(69) 대한항공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6일 기각되면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번에 조 회장의 영장이 기각되면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모두 네 차례 구속 위기를 피하게 됐다.

이날 오전 3시20분쯤 서울남부지법 김병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사실들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이와 관련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어 현 단계에서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조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한항공 비리 제보 채팅방에 성토 이어져

대한항공 직원들이 지난 5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대한항공 직원들이 지난 5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영장 기각 사실이 알려지자 총수 일가 퇴진을 주장하는 대한항공 직원들은 집단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약 3000명이 참여 중인 '대한항공 갑질·비리 제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직원들은 "이게 나라냐" "총수일가 퇴진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등 푸념을 쏟아냈다. 한 직원은 "수천억원을 도둑질한 사람을 그냥 풀어주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지난 4일 출범한 민주노총 산하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도 "서울 광화문에서 '갑질근절 게릴라 홍보'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일부 대한항공 직원들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아시아나 항공 직원들이 개최하는 '박삼구 회장 갑질 및 비리 폭로' 집회에 참석할 의사를 밝히며 "양대 항공사 직원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 회장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은 "기각사유분석 및 추가 수사 내용을 검토 후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번째 구속위기 피한 조양호 회장 일가 

조 회장 일가가 구속 위기를 피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5월 4일 서울남부지검은 '물컵 갑질' 논란으로 수사를 받던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반려했다.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두 차례 구속위기를 면했다. 지난달 4일 서울중앙지법은 특수폭행·특수상해·상습폭행·모욕 등 7개의 혐의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해 "범죄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고 이 전 이사장이 피해자들과 합의를 통해 범죄사실에 관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보름 후인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김영현)도 이 전 이사장에 대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출입국 관리법 위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이 역시 기각됐다.

조양호 회장 일가 구속영장 반려·기각 일지

5월 4일: 조현민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 - 검찰이 반려
6월 4일: 이명희 특수폭행·특수상해·상습폭행·모욕 등 혐의 - 법원이 기각
6월 20일: 이명희 출입국 관리법 위반 혐의 - 법원이 기각
7월 6일: 조양호 약사법 위반 등 혐의 - 법원이 기각

"보여주기식 영장청구가 문제" 지적도 

양홍석 변호사 [중앙포토]

양홍석 변호사 [중앙포토]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한항공 총수일가의 구속영장 기각보다 수사기관의 구속영장 청구가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속이 곧 성과라는 인식 때문에 수사기관이 보여주기식 구속을 좇는다는 의미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은 "국내 수사기관은 증거인멸 우려 등 수사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수사가 거의 끝날 무렵 성과위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관행이 있다"며 "이미 증거를 확보하고 수사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피의자를 구속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문화가 만연해 구속 만능주의로 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한진그룹 갑질'을 언급한 것을 수사기관이 쫓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들의 수사의지와 성과를 보이기 위해 구속영장 청구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원석·조한대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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