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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올림픽 후의 우리 문화 진로 특별좌담|「서울의 동구 예술」 신선한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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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올림픽을 전후해 약 한달반 동안 잇달아 펼쳐지고 있는 올림픽문화행사는 그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우리민족이 처음 마련한 큰 잔치였다. 우리 문화계의 역량이 총집결된 다양한 행사가 연일 펼쳐지며 국민들의 유례없는 관심을 모았다. 특히 그동안 막혀있던 동구권문화예술공연의 첫선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올림픽 문화행사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세계의 문학예술을 받아들이는 면에 있어서 얼마나 내실 있는 효과를 얻었는지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세계의 문화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번 올림픽문화행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예술을 크게 발전시킬 전기를 마련해야한다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공통된 각성인 것 같다. 관계전문가의 좌담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이상만=이번 올림픽문화행사는 무엇보다 우리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문화잔치로 센세이셔널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그동안 막혀있던 소련 등 동구권의 문화예술이 봇물 터지듯 들어와 국민들에게 첫선을 보인 것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공산권교류 가능성 관심>
▲유종호=펜대회 역시 동구권작가들이 대거 참여한데서 의의가 컸습니다.
대회기간을 통해 그들은 뉴스의 초점이 되는 등 큰 관심을 모았지요.
지금까지 폐쇄되어 아는바가 극히 적었던 그들과 처음 접촉하고 미약하나마 대화를 통해 교류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봅니다.
▲이종상=아마 미술분야 만큼 큰 행사가 많았던 분야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제현대회화전 등 공식행사만 30여가지 였으며 세계 60여개국에서 2백명 가까운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국내외 작가가 총망라되다시피해 다양하고 화려한 행사를 치렀습니다.
▲손진책=음악은 레코드를 통해서, 미술은 그림을 통해서, 문학은 글을 통해서 외국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습니다만 유독 연극은 직접 봐야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문화행사는 그동안 볼 기회가 적었던 외국의 연극을 많이 볼수 있었습니다. 우리 연극인들이 보고 배울게 많았던 셈이지요.
이번 행사 중 외국연극은 입장권이 매진되다시피 했고 우리연극에도 많은 관객들이 몰린 것을 보고 『역시 관객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우리연극이 이들을 끌어들일 만큼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관객이 적었던 셈이지요.
▲이상=동구권의 공연은 그들이 단지 동구권의 첫 공연이라는 점 외에도 내용 면에서도 국내 예술계에 강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첫째 그들의 통제사회체제 속에서도 예술은 훌륭히 발전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둘째로는 그들의 직업적 자세였습니다.
볼쇼이발레의 총감독은 『예술은 체제와 상관없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하더군요. 물론 그들의 체제 속에서 「인간적 예술」은 어렵겠지만 수준은 매우 높았고 개개인의 기량은 완벽했습니다.
정치와 예술을 연계시켜온 흑백 논리적 사고방식은 이제 불식되어야할 것입니다.
▲유=이번 펜대회에 참석한 소련작가동맹 제1서기는 「고르바초프」 이후의 변화도 교류의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요즘 체제적 작가도 사회 비판적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그들을 너무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편견과 허상에 사로잡혀있었던 셈이지요.
예술은 보편성을 갖습니다. 이제 편협의 담을 헐고 활발한 교류의 장을 펼쳐야할 것입니다.

<마당놀이 연극 인정받아>
▲이종=몽촌토성 훼손·연판장 사건 등 말썽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미술계는 이번 올림픽문화행사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올림픽 조각공원을 마련한 것은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조각공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국제전을 유치함으로써 우리 미술계가 자각의 기회를 가졌으며 국제적 진출의 역량을 키울 무대가 마련됐다고 봅니다.
▲손=이번 올림픽 문화행사 덕분에 우리의 전통연극인 마당놀이·창극 등이 국제서울연극제에 참가, 「정식으로」 연극으로 인정받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연극에서 제외 됐었거든요.,
그러나 우리연극을 이것밖에 보여줄 수 없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
▲이상=처음 치른 큰 잔치인 만큼 여러 가지 문제점도 적잖이 부각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혼이 담긴 우리의 문화예술을 소개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입니다.
▲이종=외형에만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아요. 외국인들에게 우리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을 초청해 보는 행사가 되고 말았지요.
다양한 것은 좋지만 잡다한 것은 문제입니다. 우리 것으로 현대작품과 16, 17세기 작품까지 뒤섞이는 바람에 외국의 한 평론가는 전시의 무성격을 지적해 『현대전이냐, 박물관이냐』는 비아냥까지 하더군요.
또 유치단계에서 비조직적이고 무계획적인 행정 때문에 많은 외국 유명작가가 초청을 외면했던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펜대회에서는 외국대표들을 지나치게 환대하는 바람에 『사교클럽이냐』는 비판도 무성했습니다. 대접받는 그들이 당황할 정도였으니까요.
▲손=이번 행사를 보니 정부가 그동안 문화예술분야에 지원을 좀더 잘 해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일류호텔에 묵은 외국연극인이 『역시 한국은 잘사는구나』고 하더군요.
그동안 연극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한심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상=모든 것이 공연자체에만 치우친 느낌입니다. 공연만 올렸을 뿐 그 공연을 레코드나 문헌 등 공연외적 방법으로 알리는데는 미흡했습니다.
우리는 판소리공연에 영어자막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본은 『가부키』 공연에 이어폰까지 동원했더군요.
외국초청공연도 공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국내예술인과의 적극적인 교류 기회를 마련했어야 했습니다.
▲손=연극도 전시효과를 노려 일부 대극장에서만 공연했을 뿐 소극장은 소외되었습니다.
연극학술회의도 고답적인 결과만 낳았을 뿐이고 우리연극의 소재가 미흡했습니다. 일본의『가부키』나 『노』가 동경올림픽이후에 국내외적으로 크게 발전했던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마련한 행사에서 우리 것을 알리고 발전시킬 발판을 마련하는데 크게 미흡했습니다.

<체육행사 들러리 그친감>
▲이상=전체 문화행사에 테마와 메시지가 없다보니 체육행사의 들러리에 그친 감이 없지않습니다. 특히 문화행사마저 스포츠처럼 강대국위주의 행사가 되어선 안되겠지요.
▲손=이번 올림픽문화행사를 치른 결과 우리는 많은 문화수요층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각 공연장에 몰리는 많은 관객들을 보고 문화예술을 무시해오던 정부도 각성하는바가 클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독자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현대화된 예술을 마련해 세계에 내세울 자세를 갖춰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종=현대미술에 무관심하던 많은 이들이 서서히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큰 소득입니다.
이제 우리도 지속적인 국제미술행사를 마련해 외국과 정기적인 교류를 펼쳐나가고 미술품의 수출입시장도 확대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문화예술 각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신설될 문화부도 강화되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처럼 소극적인 지원만으론 부족합니다.
특히 이번 해외교류관계에서 우리가 깨달은 바와 같이 국제적인 전문 커미셔너와 큐레이터도 시급히 양성해야겠습니다.

<관주도형 문화정책 탈피>
▲이상=이번 합창제에 참가했던 일부 외국합창단이 우리민요와 가곡을 부르는 것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경시해오던 우리작품들도 훌륭히 국제적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지요.
이제 우리는 보다 우리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국제화될 수 있도록 가꾸고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문화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가는 이번 행사에 참여한 소련문화의 회오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유=이번 행사로 문화분야에서는 가시적 변화나 영향은 찾기 어렵겠습니다만 우리문학의 의식과 시야를 넓히는데는 기여한바가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앞으로 동구권의 많은 문학작품이 번역 출판될 것입니다만 우리 것을 해외에 알리는데 더욱 힘써야되겠지요.
▲손=동구권연극의 강한 혼과 주체의식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 중앙일보가 문화올림픽 축전행사로 초청한 코미디 프랑세즈의 프랑스 전통희극 『서민귀족』은 그 정통성과 노련한 연기 등으로 유럽 연극의 현대적 전통을 새삼 일깨웠지요. 이제 우리도 극단마다 독자적인 철학과 컬러를 가꿔나가며 국제성을 지향해야겠습니다.
▲이상=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음악의 정체를 확인했습니다. 이번에 왔던 「갤브레이스」는 『한국의 경제적 역량보다 오히려 문화예술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제 문화예술계 개개인이 자생력을 키우고 정부는 여기에 적극 투자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이종=관주 도형의 문화정책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정부는 후원하고 문화인 스스로 발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강조만 하다보면 시기한 토속문화로 비칠 위험성이 큽니다. 우리의 예술을 국제적인 개연성으로 새롭게 발전·확립시켜야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상=이번 행사를 통해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새삼 인식시킨데는 언론의 힘도 컸었습니다. 1면에 크게 문화관계기사가 보도되는 등 언론에도 문화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 같았습니다.
▲유=문학이 이제는 체제를 초월해 보편성의 추구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편견은 없어져야한다는 뜻이지요.
▲이상=올림픽 문화행사라는 사상 유례없는 문화예술계의 큰바람이 불고 난 후 많은 앙금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앙금을 새로운 문화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문화행사는 우리에게 전반적으로 긍정적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리=이창우 기자>

<참석자>
손진책(연극연출가)
유종호(문학평론가·이대교수)
이상만(음악평론가)
이종상(동양화가·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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