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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끝난 뒤 해야 할 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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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우리 사회는 온통 올림픽의 열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서울 거리는 가는곳 마다 오륜기와 올림픽 상징물로 뒤덮여 있고 신문과 텔레비전들은 모두 올림픽과 관련된 기사로 가득 차 있어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활동은 잠시 올림픽을 위해 모두 중단된 것 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5공 비리의 문제라든가 이념논쟁과 같은 골치 아픈 문제들은 올림픽 축제무드에 묻혀 어디론가 밀려나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세계 각 국의 선수들이 엮어내는 드라마에 모두가 몰두하고 감탄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하기야 50억 세계인구의 대축제라는 올림픽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우리의주관하에 개최되고 있는 마당에 누구나 가슴 뿌듯해 하고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지난 4O여년 동안 분단과 전쟁, 빈곤과 학정의 고통을 겪은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서 서울올림픽의 개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올림픽의 축제무드에 도취된 나머지 올림픽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를 잊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81년 그 유명한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이 결정되었던 순간에 느꼈던 당혹감이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올림픽유치 결정이 내려지고, 또 서울올림픽이 확정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제기되었던 문제는 적자올림픽에 대한 우려였다. 올림픽으로 인한 과잉투자와 과대소비가 우리 경제를 수렁으로 몰고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서울올림픽의 정치적 합의가 무엇인지를 헤아릴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당혹감이 깊어지게 되었다.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무산시키고 등장한 강압적인 정권에 의하여 올림픽유치가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서울올림픽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은 착잡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북한과같이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는 분단국가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이 과연 현명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서울올림픽으로 말미암아 북한의 고립화가 심화되고 그것이 분단의 장벽을 더욱 높게 쌓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지난 7년 동안 정부가 그야말로 국력을 기울이다시피 하여 올림픽을 준비하고 올림픽의 중요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흔쾌하게 서울올림픽을 수용 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제적 사정이 그후 점차 호전됨으로써 적자올림픽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 날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5공화국의 강압적인 통치체제를 국민들의 힘으로 종식시키고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서울올림픽을 국민적 축제로 받아들일수 있게되었다.
비록 남북한의 공동개최, 또는 공동참여를 통하여 서울올림픽을 민족적 화해와 전진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역설적으로 북한의 불참으로 말미암아 분단의 아픔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도 서울올림픽은 민족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출발점을 제공해 주었다고 하겠다.
사실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손에 손잡고」 다같이 전진하자는 올림픽의 주제가를 들으면서, 그리고 서독과 동독 같은 분단국가들이 나란히 입장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면서, 남과 북의 높은 벽을 뛰어넘지 못한 우리의 처지가 더욱 안쓰럽고, 아직도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분열되어 있는 우리사회의 모습에 새삼스럽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 것은 올림픽이후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예고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서울올림픽은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국민이 마음속에서부터 바라는바가 무엇인가를 뚜렷이 보여줌으로써 올림픽이후 정국의 방향까지도 암시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 국민적 화합과 전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민주화의 작업이 더욱 진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협력은 지난해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산출되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올림픽의 축제무드에 편승하여 민주화를 처리하거나 지연하려는 것이 얼마나 큰 국민적 좌절과 저항을 촉발하게 될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둘째, 서울올림픽은 50년대의 냉전적 세계관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를 충격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반공이데올로기와 이념논쟁은 국민적 설득력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편협성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세계관과 통일정책을 요구할 것이란 점이다.
끝으로 서울올림픽을 경험한 국민들은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정책과 복지정책의 실천이 더욱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점에서 서울올림픽은 모든 정치세력에 새로운 과제를 제시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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