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로변 걸어 등·하교 9살 소녀의 천식 사망, 대기오염과 직접 연관"

중앙일보

입력

3년 간 천식 증상을 보이다 9살의 나이로 2013년 숨진 엘라. 그의 사망 원인이 대기 오염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보고서가 영국에서 나왔다. [BBC 캡처]

3년 간 천식 증상을 보이다 9살의 나이로 2013년 숨진 엘라. 그의 사망 원인이 대기 오염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보고서가 영국에서 나왔다. [BBC 캡처]

 3년간 천식 증상을 보이다 9살 때 숨진 소녀의 죽음과 법적 기준치를 넘는 대기 오염이 관련이 있다는 보고서가 영국에서 나왔다. 대기 오염이 건강과 생명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많았으나, 개인의 사망 원인에 직접 연관돼 있다는 조사가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BBC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부 자문위원장 출신 英 교수, 사인 관련성 최초 인정 #대기오염 '핫 스팟' 도로변 살던 엘라 2013년 숨져 #27차례 입원, 지역 대기오염 최고 때와 거의 일치 #어머니 "남동생도 천식 증세…사인 나와야 정책 바뀐다" #

 소녀의 어머니가 이 보고서를 근거로 정부 등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 대기 오염이 직접적인 사인으로 인정되는 판결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엘라는 3년간 천식 발작과 이에 따른 병원 입원을 반복하다 지난 2013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엘라의 집은 런던의 남부를 관통하는 순환 도로(South Circular Road)에서 25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도로는 대기 오염의 ‘핫 스팟'으로 악명이 높다.

 대기 오염 및 천식과 관련해 정부 자문위원장을 지낸 사우샘프턴 대학병원의 스티븐 홀게이트 교수가 엘라의 사망 원인을 조사해 보고서를 냈다. BBC에 따르면 홀게이트 교수는 보고서에서 “엘라의 응급 병원 입원과 가장 유해한 오염 물질인 이산화질소나 미세먼지가 해당 지역에서 급격히 증가한 것 사이에 주목할 만한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불법 수준의 대기 오염이 없었다면 엘라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엘라는 2011년 폐 기능에 손상을 입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엘라 어머니 로사먼드 키시-데브라]

엘라는 2011년 폐 기능에 손상을 입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엘라 어머니 로사먼드 키시-데브라]

 엘라의 어머니 로사먼드 키시-데브라에 따르면 엘라는 천식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엘라는 남부 순환 도로를 따라 30~40분 가량 걸어 학교를 오갔다. 어머니가 승용차로 데려다주기도 했지만 교통 체증 때문에 상당 시간을 매연이 많은 도로 위에서 보내야 했다.

 엘라가 기침을 하고 처음 병원에 입원한 것은 2010년 12월. 키시-데브라는 “아이가 이른 아침에 갑자기 천식 발작을 일으켰다"며 “이웃이 내 비명을 듣고 달려와 아이에게 인공호흡을 시킨 뒤 구급차를 불러줬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회성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계속 악화했다"고 덧붙였다.

 2011년 엘라의 폐 기능이 저하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홀게이트 교수는 엘라의 집에서 1.6㎞ 떨어진 곳에 정부가 대기 오염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설치한 감시소의 기록을 조사했다. 이보다 약간 더 떨어진 곳의 감시소 자료도 확보했다. 이를 엘라의 병원 방문 자료와 함께 분석해보니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는 게 홀게이트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종류의 점액이 엘라의 폐를 막아 사망에 이르렀다. [엘라의 어머니 로사먼드 키시-데브라]

이런 종류의 점액이 엘라의 폐를 막아 사망에 이르렀다. [엘라의 어머니 로사먼드 키시-데브라]

 엘라는 3년 동안 27차례 입원했다. 이 중 한 차례를 빼고는 해당 지역에서 대기 오염이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시기와 일치했다. 홀게이트 교수는 “대기 오염에 노출된 것이 엘라가 앓은 질병의 핵심 원인”이라며 “법적 허용치를 넘은 대기 오염은 엘라의 천식 발병과 악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치명적인 천식 발작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엘라는 해당 지역이 최악의 대기 오염을 기록한 날 직후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홀게이트 교수는 엘라와 관련해 다른 원인도 조사했지만, 사망 원인은 급성 호흡 부전과 대기 오염에 의한 2차적인 천식으로 기록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엘라가 생전에 남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BBC 캡처]

엘라가 생전에 남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BBC 캡처]

 엘라의 어머니 키시-데브라는 “엘라가 차량이 많은 도로변에 있을 때 천식이 악화하는 것을 봤다"며 “만약 대기 오염과의 연관성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받았더라면 아이를 데리고 오염이 덜한 지역으로 이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 오염이 심한 날에는 집의 창문을 닫고 완전히 밀폐하려는 노력이라도 기울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엘라는 쌍둥이 남동생을 뒀는데, 이 중 한 명도 현재 천식 증세를 보인다. 키시-데브라는 “아들이 엘라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대기 오염이 남동생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며 “요즘은 남부 순환도로 대신 공원을 통과해 돌아서 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키시-데브라는 인권변호사인 조슬린 칵번과 함께 엘라의 죽음이 대기 오염 때문이라는 판결을 받아내려 애쓰고 있다. 런던 시장과 집이 위치한 지방 정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었지만 사망과 대기 오염 간의 연관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이번 보고서를 법무부 장관실로 보냈다. 장관의 승인을 얻어 고등법원에 항소해 소송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엘라의 어머니를 도와 사인을 밝히는 소송에 나서고 있는 조슬린 칵번 변호사(왼쪽) [PA]

엘라의 어머니를 도와 사인을 밝히는 소송에 나서고 있는 조슬린 칵번 변호사(왼쪽) [PA]

 칵번 변호사는 “엘라의 사망에 대한 보고서는 정부가 대기 오염을 기준치 이상으로 낮추지 못할 경우 인권법에 규정된 생명권을 침해했다는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키시-데브라는 “대기 오염과 관련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 정부 등이 운전자의 편의보다 아이들의 건강을 우선하게 될 것이므로 반드시 사인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