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청년일자리사업도 정부 저출산 해소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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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 병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 병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해외 청년 일자리 사업과 대학 구조 개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급하는 출산축하금 등이 실질적인 저출산 해소 효과가 있는 지 의문입니다.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행복주택 사업도 실제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충분한 면적을 확보하지 못해 현실성이 떨어져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최근 정부에 제출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보완 연구’(책임연구자 김종훈 연구위원) 보고서에서다. 김 위원은 “저출산 대책의 핵심인 청년 일자리·주거 대책은 10년 이상의 매우 장기적인 사업이다. 이게 5년 단위의 저출산 대책에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현재 시행 중인 3차 기본계획(2016~2020년)의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정부 대책 비판 #예산 70% 아동 보육 확대에 집중 #인구정책과 복지정책 구분해야

보사연은 보고서에서 기존 대책의 문제점으로 ▶낮은 국민 체감도 ▶백화점식 나열 ▶복지 확대 위주를 들었다. 우선 저출산 대책이 2006년부터 127조원을 투입했지만 효과가 미흡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연구팀은 “아동·노인 돌봄 등 취약계층 중심의 비용 지원이나 기초연금·노인장기요양보험 같은 보편적 복지 확대를 위한 기반 마련 위주로 정책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보육 확대에 저출산 예산의 70% 넘게 썼지만 이게 아동복지 확대 정책이지 인구 대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아이 돌봄 사업이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에 흩어져 있어 정책의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저출산 대책 인식과 체감도가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점도 문제점으로 들었다. 너무 장기적이거나 단기적이라서 결혼·출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정책들이 저출산 대책으로 둔갑됐다고 지적했다.

1~3차 대책에서 큰 틀을 바꾸기보단 개별 정책을 조금씩 고치는 식으로 대응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평면적으로 나열된 복지 정책으로 출산율 회복 등 장기 인구변동을 지향하는 ‘부정교합’이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보사연 연구팀은 “인구 정책과 복지 정책을 명확히 구분해야 할 때”라며 “합계출산율보다 출생아 수, 혼인 건수가 정책적 실효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복지의 대상을 보편적으로 늘리기보단 사각지대 해소, 다양한 가족 정책 등에 집중해 취약계층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모든 사회 정책 수단을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란 이름으로 모으는 방식도 탈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사연 유체이탈 비판” 지적도=보사연의 비판이 ‘유체이탈식 비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사연이 2006년부터 1~3차 기본계획의 뼈대를 만들어놓고 지금 와서 이런 저런 지적을 하는 게 앞뒤가 안 맞다는 지적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보사연이 지금까지 저출산 정책을 만들고 평가까지 다 해놓고, 마치 객체처럼 정책을 비평했다. 이미 알려진 문제점을 뒷북 치듯 제시하고 구체적 대안이 안 보인다”면서 “사회적 조건과 상관없이 인구에 기여한다면 무조건 혜택을 주는 인구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훈 연구위원은 “보사연이 정책 실무 작업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할 순 없겠지만 실질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걸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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