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규모 유지보다 공동체 행복 증진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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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호 24면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이철희 지음
위즈덤하우스

인구변화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공포’다.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2022년의 0.78명보다 0.06명이 줄었다. 출생아 감소와 인구 고령화가 겹친 한국사회를 두고 ‘인구위기’ ‘인구절벽’을 넘어 ‘국가적 재앙’ ‘종족 소멸’ 같은 섬뜩한 표현이 난무한다. 인구감소는 경제와 군사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어 국가안보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인구경제학)로 같은 대학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인 지은이는 인구변화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차분하고 과학적으로 인구변화를 제대로 분석하고, 절망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촘촘하게 대안을 모색할 때라는 지적이다. 인구규모는 어느 정도가 합당할지, 인구구조에 맞춰 노인·여성 인력을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외국 인력의 도입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전략적으로 살펴 적극적인 인구감소 대응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은이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 감소는 자녀를 낳아 기르기가 어려운 사회적 ‘만성질환’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인구감소가 경제·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만 준 건 아니다. 인구의 감소속도·규모에서 최근 한국 상황과 비견되는 14세기 흑사병 유행시기를 살펴보자. 당시 유럽의 인구 감소는 농노제를 기반으로 하는 봉건제도를 붕괴시켰을 뿐 사회와 경제의 몰락을 불러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구감소는 오히려 자원과 인구 간의 균형을 바꾸면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영국의 경우 인구가 줄면서 식량을 생산하던 경작지의 상당부분이 목초지로 전환돼 양모의 품질향상으로 이어졌다. 이는 모직물 산업발전과 임금상승, 도시화, 석탄산업 성장으로 이어져 산업혁명기 기술혁신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영국이 1800년 무렵 부강한 나라로 떠오른 배경이다.

물론 인구는 경제·군사력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다. 인구증가가 수요를 증가시켜 기술혁신을 촉진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지구 전체가 촘촘하게 연결돼 상품·자본·인력·아이디어가 신속하게 공유되는 21세기에는 한 국가의 인구규모가 시장규모를 결정하는 힘이 과거보다 약해진 게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인구감소 자체보다 그 속도에 주목하면서 인구축소에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인구규모의 감소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이런 인구변화는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라는 경제문제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은이에 따르면 청년노동자 수급불균형은 노인·여성·중장년층의 노동참여 활성화와 외국 인력의 적절한 이용으로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시장에서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인구감소가 위기를 부를 수 있지만 세밀하게 전략을 마련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펼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책 무게를 인구규모 유지가 아닌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행복 증진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울림을 준다. 부제 ‘새로 쓰는 대한민국 인구와 노동의 미래’.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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