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면 다시 꿰매면 된다고 생각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붕대 투혼을 불사른 한국축구대표팀 이용(32·전북)을 1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의 이마에는 여전히 흉터가 남아있었다.
오른쪽 수비수 이용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 모두 풀타임을 뛰었다. 지난달 12일 세네갈과 비공개 평가전에서 이마가 7cm 찢어졌다. 이용은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상대 팔꿈치에 이마를 찍혔다. 손을 갖다댔더니 피가 흥건히 묻어나와 응급실에 실려갔다. 7바늘을 꿰매고, 속안까지 꿰맸다"고 말했다.
"당장이라도 헤딩할 수 있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친 이용은 지난달 18일 스웨덴과 1차전에 흰색 헤어밴드를 차고 출전했다. 1998년 이임생, 2002년 황선홍, 2006년 최진철처럼 핏빛 붕대 투혼을 펼쳤다. 하프타임 때 그의 흰색 헤어밴드는 검붉게 물들었다.
이용은 "전반이 끝나면 90분을 뛴 기분이었다. 황선홍 등 선배님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떠오르더라. 하프타임 때 붕대를 이중으로 재차 감고 각오를 다잡았다"며 "두렵진 않았다. 이마가 또 찢어지면 다시 꿰매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용은 지난달 24일 멕시코와 2차전에서 1-2로 패한 뒤 무릎을 꿇고 서럽게 울었다. 손흥민(토트넘)은 이용에게 다가가 함께 눈물 흘렸다. 이용은 "2연패를 당하니 동생들이 나같은 길을 걸을까, 비난과 질타를 받을까 걱정돼 울음이 터졌다"고 말했다. 이용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3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1무2패로 탈락했다.
이용의 에이전트인 최동현 그라운드스타스포츠그룹 실장은 "이용은 지난해까지만해도 월드컵 출전은커녕 은퇴까지 고민했었다"고 전했다. 2016년 11월, 2017년 9월과 11월 무려 3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이용은 "2016년 초 갑자기 배에 알이 배긴 것처럼 통증이 왔다. 국내 병원들을 돌아다니면서 MRI(자기공명영상)를 수차례 찍었지만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탈장 진단을 받고 뱃속에 패드를 4개 대는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증이 재발했다. 이용은 "일본에서 재수술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독일로 건너가 재수술을 받았지만 통증은 계속됐다. 이대로 은퇴하는거 아닐까란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이용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차 독일로 건너가 다른 의사에게 3번째 수술을 받았다. 이용은 "스포츠탈장은 일반인이 아닌 운동선수에게 맞게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라. 패드를 제거하고 수술을 마쳤다. 마취에서 깨어났는데, 독일 의사가 다가와 '축하한다.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고 회상했다.
공교롭게도 이용은 다시 축구화를 신게 만들어준 독일에 비수를 꽂았다. 이용은 지난달 28일 세계 1위 독일과 3차전에서 2-0 승리에 힘을 보탰다. 이용은 "수술해준 독일 의사 선생님이 후회하실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내가 뛰는 모습을 보셨다면 흐뭇해하셨을 수도 있다. 특이한 케이스라 수술하신걸 논문으로 발표하셨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용은 마르코 로이스(도르트문트) 등 독일 공격수들의 쉴새없는 공격을 몸을 던져 막아냈다. 이용은 "전반을 마친 뒤 라커룸에서 우리도 독일과 해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어쩌면 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월드컵에서 1승을 거뒀다. 후배들이 너무 대견해 또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염기훈(35·수원)과 이근호(33·울산) 등이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이번대회 최고참이었던 이용은 "난 리더십이 강하지도 않고 말주변도 없다. 맏형으로 그저 열심히 뛰면 후배들이 따라와줄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용은 독일전에서 토니 크로스(레알 마드리드)의 킥에 사타구니 부근을 맞아 쓰러졌다. 축구팬들은 이용에서 동그라미 두개를 뺀 '이ㅛ', '일용' 등 재미있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용은 "경기 후 화장실에 갔을 땐 잠깐 아팠지만 이젠 괜찮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며 웃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