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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미국 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앞뒤 재볼 것도 없이 남은 아르헨티나 전을 승리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돌이켜보면 20일 미국과의 부산경기는 참으로 안타까운 한 판 이었다. 줄기찬 공세에도 끝내 열리지 않는 미국 골문은 두터웠다.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한 미국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한 것은 미국을 탓하기 앞서 일단 한국축구의 실패작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비록 차선책이긴 하겠지만 한국보다 유리한 고지를 확보해 놓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비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계산을 했음 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마땅히 승부수를 띄워야 했고, 그것은 선수기용에서부터 부분전술 구사에 이르기까지 「필승전략」을 강구했어야 옳다. 김감독 스스로 미국을 희생양으로 삼겠다고 공헌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막상 출전오더를 확인하는 순간 적이 실망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그 같은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의 우려는 아닐 성싶다. 미드필더인 최강희, 최윤겸의 선발기용은 다분히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었는지.
이들은 공격형이라기보다 수비형 링커인데 필승오더치고는 걸맞지 않았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이보다 차라리 공격형 미드필더인 노수진, 여범규를 기용, 공격력을 보강하는 게 바람직했다.
작전구사나 전개 솜씨도 기대에 미흡했다. 미국은 신장이나 체력에서 한국에 월등히 앞선다.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몸싸움을 피해 미국수비진을 끌어내는 다소 변칙적인 부분전술의 구사가 소망스러웠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줄기차게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이라면 장신 김용세를 투입, 최순호와 함께 더블포스트 플레이를 고려해 봄직 했고 센터링에 의한 슈팅만을 고집할게 아니라 중거리 슛 아니면 부분적인 세트플레이를 시도, 승부처를 찾아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교과서적인 「김정남 축구」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제 남은 길은 오직 하나, 무조건 아르헨티나를 꺾는 것뿐이다. 20일 경기에서 소련에 패해 1무1패를 마크한 아르헨티나 역시 사력을 다할게 틀림없다. 한국을 잡을 경우 8강 진출의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담스럽기는 양팀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두게임을 통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르헨티나는 분명히 해볼만한 상대라는 사실이며, 무엇보다 지난 일을 덮어두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선택이 분명해진 이상 88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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