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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투혼'급 슈퍼세이브...박성현, 여자 PGA 유소연에 역전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성현이 16번 홀에서 헤저드 지역에 떨어진 공을 살펴보고 있다. 박성현은 이 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EPA/TANNEN MAURY]

박성현이 16번 홀에서 헤저드 지역에 떨어진 공을 살펴보고 있다. 박성현은 이 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EPA/TANNEN MAURY]

박성현이 2일(한국시간) 미국 시카고 인근 켐퍼 레이크스 골프클럽에서 벌어진 LPGA 투어 메이저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박성현은 이날 3언더파 69타, 합계 10언더파로 유소연, 하타오카 나사(일본)와 연장전을 벌여 승리했다. 통산 4승, 시즌 2승, 지난해 US오픈 우승에 이어 메이저 2승이다.

16번홀 두번째샷 물가 깊은 러프에 빠져 #언플레이어볼 대신 로브샷, 파로 막아 #2차연장 끝 유소연 울리고 메이저 2승 #유소연 "17번 홀 다시 티샷했으면" #2타차 선두 지키던 유소연 17번홀 불운 #티샷 바람에 밀리며 물에 빠져 더블보기

지난해 ‘올해의 선수상’을 공동 수상한 두 선수의 대결이었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초반부터 리더보드가 흔들렸다. 박성현은 유소연과 4타 차이가 나는 3위로 챔피언 조에서 경기했으나 곧 접전이 됐다. 유소연은 2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하고 박성현은 3, 4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동타가 됐다.

이후 박성현이 파 행진을 벌이는 동안 노련한 유소연은 다시 도망갔다. 6번 홀부터 11번 홀까지 버디 3개를 잡아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16번 홀이 하이라이트였다. 왼쪽 호수가 페어웨이 곳곳으로 파고 든 물이 많은 이 홀에서 박성현의 티샷은 뒷바람을 타고 너무 많이 나갔다. 공은 물가 내리막 러프에 멈췄다. 길면 러프, 짧으면 해저드인데 내리막 라이에 러프 속이어서 이도 저도 쉽지 않았다. 호수 너머에 있는 핀을 향해 쏜 박성현의 두번째 샷은 짧았다. 그린 주위 경사를 맞고 물 쪽으로 굴러 내려왔다.

공은 해저드 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물 속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바로 물가였고 러프는 매우 길었다. 1998년 US오픈 연장전 18번홀에서 박세리가 빠진 물가 러프, 이른바 '맨발의 투혼' 못지 않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언뜻 봐서는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박성현은 캐디와 함께 유심히 상황을 살폈다. 캐디는 물 속에 들어가서 공의 상태를 봤다. 결국 그냥 치기로 결정했다. 박성현은 이를 악문채 클럽을 짧게 잡고 힘껏 로브샷을 쳤다. 공은 높이 떴다가 핀 주위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평소 액션이 거의 없는 박성현이 주먹을 불끈 쥘 정도로 멋진 샷이었다.

유소연은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 2타 차 선두로 나섰다. 그러나 박성현도 천금 같은 파 세이브를 하면서 추격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기회가 왔다. 유소연은 물을 건너는 파 3인 17번 홀에서 티샷이 바람에 밀려 물에 빠졌다. 더블보기가 나왔다.

유소연이 17번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린 후 드롭하고 있다. 이 홀에서 유소연은 더블보기를 했다. [EPA/TANNEN MAURY]

유소연이 17번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린 후 드롭하고 있다. 이 홀에서 유소연은 더블보기를 했다. [EPA/TANNEN MAURY]

결국 10언더파 동타로 연장전이었다. 지난 주 우승한 일본의 무서운 10대 하타오카 나사는 이날 이글 2개를 잡는 등 8언더파 64타를 쳐 연장전에 합류했다.

18번 홀에서 치러진 연장 첫 홀에서 유소연의 두 번째 샷이 좋지 않았다. 그린 오른쪽 끝에 있는 핀을 공략한 유소연의 샷은 오른쪽으로 밀려 물에 들어가는 듯했다. 유소연은 또 다시 물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에 탄성을 질렀다.

연장전에서 패한 하타오카 나사. [EPA/TANNEN MAURY]

연장전에서 패한 하타오카 나사. [EPA/TANNEN MAURY]

그러나 이번에는 바람이 공을 그린 쪽으로 밀어줘 그린 경계에 멈췄다. 유소연은 약 4,5m 되는 버디 퍼트를 집어넣었다. 박성현도 2,5m 버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타오카는 탈락했다.

박성현이 어려운 파 세이브에 성공한 16번홀에서 두 번째 연장전이 벌어졌다. 유소연은 약 7m, 박성현은 약 2.5m 버디 기회를 맞았다. 두 선수가 그린에 왔을 때 썬더스톰이 와 경기가 잠깐 중단됐다. 10여분 후 재개된 경기에서 유소연의 버디 퍼트는 홀을 외면했다. 박성현의 버디 퍼트는 홀에 들어갔다. 박성현은 울었다.

박성현은 경기 후 “오늘 보기가 없이 모든 것이 잘 됐다. 잘 참고 기다렸다. 정말 기쁜 날이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우승하던 장면을 생각하면서 경기했다”고 말했다. 16번 홀 상황에 대해 “굉장히 당황했다. 캐디가 '반드시 이 홀에서 파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을 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캐디가 '공 밑에는 물이 전혀 없으니까 자신 있게 하면 된다'고 한 말이 굉장히 힘이 됐다. 그래서 좋은 샷이 나왔고 연장전에 갈 수 있었다. 정말 중요했던 샷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주 생일을 맞았던 유소연은 “(더블보기를 한 17번 홀에서) 바람이 왼쪽으로 너무 강했다. 그 것만 아니면 이번 주는 내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박성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유소연은 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17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싶은데, 그때 결정했던 것은 내 최선이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지 굴지 않고 힘을 불어 넣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소연이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후 2타 차 선두로 나서며 기뻐하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유소연이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후 2타 차 선두로 나서며 기뻐하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유소연은 전날까지 10라운드 연속 60대 타수를 기록 중이었다. 우승을 했다면 세계랭킹 1위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7번 홀 바람에 우승을 빼앗겼다. 유소연은 또 3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었다. 유소연도 인터뷰 중 약간 울먹였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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