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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취업난 모르는 미국 대학생, 그러나 4400만명이 빚더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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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지난 4월 현재 두 자릿수(10.7%)를 기록하며 ‘취업 한파’가 여전함을 입증했다. 대졸 청년들은 학기 등록금 500만원 정도를 꼬박꼬박 내며 대학을 졸업했는데, 자신의 능력을 제 값에 사줄 일터가 없다는 소외감과 박탈감에 힘이 빠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위로가 될 순 없다.

학생 1인당 평균 대출금이 4000만원 #취업후 10년 동안 빚 갚느라 허덕 #35세 이하 주택 소유 비율도 크게 줄어

미국 대학의 졸업시즌은 5월이다. 지난달 노스캐롤라이나주 하이포인트대학의 졸업식에서 남녀 졸업생이 환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대학의 졸업시즌은 5월이다. 지난달 노스캐롤라이나주 하이포인트대학의 졸업식에서 남녀 졸업생이 환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태평양 너머 미국에서의 전체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3%대 후반을 가리키고 있다.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도 별다른 어려움없이 직장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청년들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그러나 미국 청년들에게도 그늘진 면이 있다. 지난달 졸업식을 치르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사회초년병들은 학생시절 대출금이 만만치 않아 취업 후 10년 이상은 빚 갚기에 허덕이느라 고달프다. 학생 대출은 젊은이들의 지갑까지 닫아버려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달 뉴저지주 럿거스대 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학사모에 '어머니의 날' 메시지를 적어 눈길을 끌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뉴저지주 럿거스대 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학사모에 '어머니의 날' 메시지를 적어 눈길을 끌었다. [AP=연합뉴스]

뉴저지주립대인 럿거스대를 졸업하고 주 정부 교육부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레베카 윌스(28)의 사례가 많은 부분을 말해준다.

월가의 금융회사에 다니는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내고 매사추세츠주의 주립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경제위기 당시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으면서 대학을 자퇴하고 뉴저지로 귀향했다.

집 근처 시립대를 거쳐 럿거스대에 편입한뒤 졸업장을 받아들었지만 6만 달러(약 6500만원)에 달하는 학생 대출금도 함께 따라왔다. 학생 시절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대출금 규모는 늘어만 갔다.

윌스는 “다른 친구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예쁜 옷도 마음껏 사고 싶지만 지금은 대출금 갚느라 아무런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취업 이후에도 매달 600달러씩 원금과 이자를 갚아가면서 이제 대출금 규모는 3만 달러 정도 남은 상태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신혼집은 월세 1350달러 원베드룸에 차리기로 했다.

조사업체인 매그니파이머니가 3069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의 학생이 대출금 부담 때문에 학업 중단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이들 중 15%는 1만 달러 이상, 50% 이상의 학생들은 2만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미국 대학의 학비와 생활비는 한국에 비해 두배 이상 비싼 편이다. 사립대나 법학대학원 또는 경영대학원의 경우 학비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웬만큼 유복한 집안이 아니라면 대학에 입학한 뒤 부모로부터 첫 등록금 정도만 지원받고 나머지는 본인이 직접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정형편이 극도로 어려운 경우 재정보조 신청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학생 대출로 학비를 마련한다. 주립대를 비롯한 공립학교의 경우 한 학기에 5000달러 정도의 빚이 생기고, 졸업할 때 4만∼5만달러 정도의 대출금을 떠안게 된다.

사립대의 경우 이보다 2배∼4배까지 규모가 커진다. 생활비까지 비싼 뉴욕대(NYU)의 경우 졸업 때 학생 대출금 규모가 7만 달러에 이를 정도다. 대부분의 학생 대출은 정부기관인 샐리메를 통해 이뤄진다.

학비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이유는 졸업 이후의 보수 때문이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학사 학위 소지자의 연평균 소득은 약 6만5482달러인데 비해 고등학교 졸업자의 연소득은 3만5615달러에 불과했다. 약 3만 달러(약3240만원) 정도의 연봉 격차를 보였다.

미국의 청년들이 빚을 끌어쓰면서 학위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학생 대출금 총액이 올해 1조4000억 달러(약 1512조원)에 달한다. 부동산 담보대출인 모기지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학생 대출금 규모가 신용카드 빚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학생 대출금을 갖고있는 학생의 숫자 또한 4400만명에 달한다. 1인당 평균 3만7171달러의 빚을 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출금 규모는 지난 10년전에 비해 세배로 커졌다. 미국의 주별 학생대출금 규모도 조사됐는데, 비교적 가난한 주일수록 졸업생 한 명 당 대출금 규모가 컸다.

미국의 주별 학생대출금 평균 금액.

미국의 주별 학생대출금 평균 금액.

뉴욕연방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매달 내는 원금과 이자 금액이 2005년에는 227달러였는데, 2016년에는 두배 가까이 늘어난 393달러에 달했다. 대졸자와 고졸자 사이에 연봉 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학위에 수요를 느낀 청년들이 많아졌고, 덩달아 학생 대출금 규모까지 늘어난 것이다. 미국 내 학사학위 소지자는 2007년 28%에서 지난해 33.4%로 증가했다.

그러나 학생 대출금 규모와 졸업후 연봉 사이의 주판알을 잘못 튕겨 낭패를 보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특히 지나친 학위 욕심에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학생 대출을 받아 20년 가까이 빚 상환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았다. 석사학위, 박사학위로 올라갈수록 더 큰 빚더미에 올라섰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대에서 문서보관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아드리엔 네일러(34)의 경우가 그렇다. 학자금을 대출받아 대학에 입학했으나 중간에 대학을 바꿔 다시 입학하면서 빚이 두배로 늘었다. 게다가 석사과정까지 이수하면서 총 30만 달러(약 3억2000만원)의 빚더미에 앉았다.

원금과 이자를 갚을 능력이 안돼 파산신청을 하는 바람에 어느 곳에서도 채용하려하지 않았다. 하버드 스퀘어에서 온몸에 흰색 페이트칠을 하고 ‘자유의 여신상’처럼 서있는 돈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네일러는 “지금은 후배들과 3베드룸에서 먹고자면서 마음 편하게 잘 살고있다”면서 “다시는 빚더미 위에 올라서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10년 조지아주에서 작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매튜 맥가비(40)도 비슷한 경우다. 10만 달러 정도의 학생 대출을 받아 현재 8만6000달러의 원금을 남겨뒀다. 아이들 음악교육하는 일이 좋아 빚을 내서 학위를 받았는데 여전히 매달 허덕이고 있다. 빚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가정을 꾸리고, 2명의 조카를  키우는 형의 모습이 부러울 뿐이다. 맥가비는 “내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있는 느낌”이라며 한숨지었다.

미국 경제는 견고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학생 대출에 따른 청년들의 빈 지갑은 특히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뉴욕연방은행이 지난해 전수조사한 결과 35세 이하 미국인들의 주택 소유율은 35%에 그쳤다. 1982년 기록한 41%에서부터 30여 년 동안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재정 부담 때문에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는 성인 자녀가 미국에서도 증가하는 추세다.

학생 대출금 규모는 가파르게 늘어나지만 35세 이하 주택 소유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학생 대출금 규모는 가파르게 늘어나지만 35세 이하 주택 소유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학생 대출금 갚기에 급급하다 보니 부동산 담보대출까지 받아 주택을 구입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뉴욕연방은행 이코노미스트인 윌버트 반데르 클라우는 “20년 전 학생 대출금 규모를 유지했다면 지금 젊은이들이 구입하고 있는 주택보다 더 많은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대졸자가 다달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임대주택으로 옮겨다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계 시민권자인 크리스 킴은 뉴욕주립대에서 재정보조를 받아서 학부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뉴욕시립대 대학원으로 진학했는데, 대학원의 경우 재정보조 신청을 할 수 없어 난감한 상태다.

크리스 킴은 “앞으로 2년 정도 다니면 2만 달러의 빚이 생기는데 어쩔 수 없이 학생 대출을 신청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이 상황에서 부동산 대출까지 추가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뉴욕주는 지난해 가구당 연소득이 1억5000만원 이하인 경우 주립대와 사립대 입학생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주의 80%를 차지하는 중하위 계층에 대해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무상교육 계획의 이면에는 아시아에서 오는 유학생들에게서 비싼 등록금을 받아야 해결 가능하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학생 비자심사를 강화하면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유학생 수가 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악재로 작용 중이다. 한국인 유학생의 경우도 7만 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15년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뉴욕시립대 측은 주 정부가 관련 예산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등록금이 50% 인상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청년들의 학생대출금은 이래저래 늘어날 전망이다. 한ㆍ미 두 나라 청년들의 ‘기쁜 우리 젊은날’이 고달프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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