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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무인운전 갈등 “신기술 시험” vs “감원이 목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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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무인 운행되는 인천지하철 2호선.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지하철 8호선을 무인 시스템인 ‘전자동운전(DTO)’으로 시험 운행했다. 설계 단계부터가 아닌 운행 중인 지하철에 도입하려 하는 건 처음이다. [연합뉴스]

무인 운행되는 인천지하철 2호선.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지하철 8호선을 무인 시스템인 ‘전자동운전(DTO)’으로 시험 운행했다. 설계 단계부터가 아닌 운행 중인 지하철에 도입하려 하는 건 처음이다. [연합뉴스]

서울교통공사가 최근 서울 지하철에서 ‘무인 운전’ 시범운행을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사 측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신기술 개발 차원이라고 설명하지만, 노동조합은 직원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공영역도 무인화로 일자리 대립 #8호선 전자동운전 시범운행 놓고 #노 “시민안전 위협, 인력감축 우려” #사 “해외진출 위해 기술개발 시급”

공사는 지난 15일과 20·28일 지하철 8호선에서 전자동운전(DTO·Driverless train operation) 시험운행을 했다. DTO는 기관사가 수동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출발·정지, 출입문 개폐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공사는 다음 달 5일 추가로 시험운행을 할 계획이다.

전동차 무인운전은 우이신설경전철, 부산지하철 4호선, 인천지하철 2호선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설계 단계부터가 아닌 기존에 운행 중인 지하철에 도입하려 하는 것은 서울지하철 8호선이 처음이다. 공사는 조만간 ‘스마트 스테이션’ 시범운영도 시작할 계획이다. 이는 역마다 설치된 지능형 폐쇄회로TV(CCTV)로 사각지대 없이 역사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지난해 9월 개통한 서울 우이신설 경전철은 무인으로 운행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지하철 8호선을 무인 시스템인 ‘전자동운전(DTO)’으로 시험 운행했다. 설계 단계부터가 아닌 운행 중인 지하철에 도입하려 하는 건 처음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개통한 서울 우이신설 경전철은 무인으로 운행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지하철 8호선을 무인 시스템인 ‘전자동운전(DTO)’으로 시험 운행했다. 설계 단계부터가 아닌 운행 중인 지하철에 도입하려 하는 건 처음이다. [연합뉴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즉각 반발했다. 노조는 지난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가 추진하는 DTO와 스마트 스테이션은 ‘무인운전’과 ‘무인역사’”라며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서울지하철엔 무인운전 도입이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양명식 노조 승무본부장은 “무인운전을 도입한 싱가포르는 터널 내 대피로가 있어 열차가 멈춰서더라도 긴급 대피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관련 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스마트 스테이션’에 대해서도 노조는 “2년 전 일어난 구의역 참사를 잊었냐”며 “CCTV를 통한 가상순찰로는 고장·화재 등에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운영 중인 무인 전동열차

현재 운영 중인 무인 전동열차

공사는 시범운영이 완전한 무인운전인 UTO(Unattended train operation)가 아닌 DTO라고 강조한다. 공사 관계자는 “DTO는 기관사가 열차에 1명 탑승하므로 비상상황에 출입문 개폐 등 응급 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스마트 스테이션도 “비상 상황에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무인역사’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노조는 공사 측의 무인 시스템 도입 목적이 ‘인력 줄이기’에 있다고 본다. 임형석 노조 역무본부장은 “회사 입장에선 (무인운전과 스마트스테이션 구축에)초기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이후엔 인력 채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예산 수천억원으로 지금 인력 구조를 한 번에 감축하려는 구조조정 수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사는 지난 2013년부터 무인운전 도입을 검토해 왔다. 당시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서울시의 의뢰로 만든 보고서에서 “UTO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도입할 경우 2030년 기준 590억원의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조는 공사가 무인운전에 대한 시민 불안감과 거부감을 고려해 DTO 방식을 우선 시도한 뒤 UTO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공사는 DTO 시범운영은 그간 기술만 도입하고 활용하지 않았던 신기술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사 관계자는 “해외 도시철도사업에 진출하려면 첨단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직원들의 불안은 이해하지만, 미래 먹거리 발굴 차원에서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민간 영역에 무인시스템이 퍼지며 생긴 사회적 일자리 갈등이 공공영역에도 나타난 것이라 지적한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5년 동안 인공지능(AI)이 확산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9개 나라에서 고용증가율이 둔화했다”며 “무인화로 인한 일자리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무인 운영을 통해 늘어난 영업 이익을 전직 교육 훈련으로 직원에 제공하는 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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