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잘생긴 북한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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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남의 외모를 굳이 품평하고 싶진 않지만, TV 뉴스 같은 데 북한 사람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생김새나 차림새를 살펴보게 된다. 반공교육을 열심히 받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사회여서 그런지,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어딘가 우리네와 다를 거란 생각에서다. 그 모습이 비슷하면 비슷한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매번 눈길이 간다.

8년 전 개봉한 송강호·강동원 주연의 ‘의형제’가 신선하게 보인 것도 그래서였다. 주인공은 전직 국정원 요원과 북한의 남파공작원. 서로 총을 겨눠야 할 두 남자가 형제 같은 연민을 느끼게 된다는 줄거리보다도 강동원 같은 꽃미남 배우가 북한 공작원 역할을 맡은 점이 단연 눈에 띄었다. 사실 이런 설정은 더이상 새롭지 않다. 이제는 충무로의 진부한 클리쉐로 느껴질 수 있다. 강동원 이후로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 ‘용의자’의 공유, ‘동창생’의 최승현, ‘공조’의 현빈, ‘강철비’의 정우성 등 잘생긴 충무로 배우가 북한 사람을 연기한 영화가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액션이 출중한 것도 공통점. 극 중 북한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이들답게, 때론 인간병기 같은 실력까지 보여주곤 했다. 분단 현실이 어느새 충무로의 액션 장르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영화몽상 6/29

영화몽상 6/29

영화의 상상력은 종종 현실을 앞서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현실이 상상을 훨씬 앞지른다. 남북 정상이,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웃으며 손을 잡는 장면은 몇 달 전만 해도 그야말로 공상 같은 얘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올여름 극장가에도 분단 현실을 배경 삼은 한국영화들이 등장한다. 그 중 ‘공작’은 1990년대 ‘흑금성’이란 암호명으로 활동한 실제 안기부 요원의 회고가 바탕인 이야기. 액션보다도 당시 남북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묘사가 지금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SF액션영화인데 2029년 통일을 앞둔 상황이 배경인 ‘인랑’도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통일 얘기는 그 자체가 SF였다”는 건 이 영화의 김지운 감독이 얼마 전 제작보고회에서 한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남북관계도 한 편의 판타지 영화처럼, 혹은 SF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가 판타지를 넘어 현실로 정착된다면, 아마 스크린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도 좀 더 다양해질 것 같다.

이후남 대중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