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린 위 굴러가는 공 치면 실격일까…필 미켈슨 위한 변명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6)

필 미켄슨. [중앙포토]

필 미켄슨. [중앙포토]

“필 미켈슨은 US오픈에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인간적이고 생각이 깊은 최고 기량을 가진 훌륭한 골퍼다.”

최근 US 오픈이 끝난 후 일주일 이상 생각한 끝에 동네북처럼 터지고 있는 그를 위한 변명을 해야겠다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7일 시네콕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US오픈 3라운드 13번 홀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는 파 4홀에서 냉탕 온탕을 오가다 4번째 만에 공을 올려놓고 보기 퍼트를 하다 공이 내리막으로 굴러 내려가자 달려가 마치 하키 하는 식으로 굴러가는 공을 쳤다.

골프계 잰틀맨의 그린 위 돌출행동

미켈슨은 이런 돌발 행동을 하면서 무엇인가 멋쩍고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보였다. 다소 짜증을 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골프계의 신사이자 가정적인 남편의 상징이던 그가 왜 골프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까? 그리고 이로 인해 큰 이익을 얻었다면(중대한 위반을 했다는 면) 그를 실격처리해야 하는 것인가? 세계적인 스타 골프선수도 당황하면 돌출행동을 하게 되는가?

나는 이날 새벽 중계화면을 보다가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고 우선 그가 골프규칙 1조2항을 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조항은 선수가 볼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줄 의도로 행동하면 2벌타를 메긴다. 또 이 조항으로 중대한 위반을 했을 경우 실격을 준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화면에는 당장 그가 무엇을 위반했는지에 대해 경기위원회의 재정(판단)이 소개되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야 그가 굴러가는 공을 칠 경우 2벌타를 메기는 14조5항을 위반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14조5항에는 실격에 관한 단서조항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켈슨이 골프규칙의 어느 조항을 인용한다 하더라도 실격을 당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경기위원회가 그를 실격처리하거나 아니면 그가 자진 실격을 선언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골프규칙에 담긴 골프의 기본정신을 생각한다면 잘못 짚은 것이다.

1조2항을 인용하더라도 중대한 위반이 발견되지 않는다. 요컨대 미켈슨이 움직이는 공을 때려 큰 이득을 보지 않았다는 계산이다. 만약 공을 굴러가게 내버려 두고 다시 공을 그린 위에 올려 1퍼트나 2퍼트를 했더라면 트리플(7타)나 더블파(8타)로 막았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10타를 쳤다.

말하자면 움직이는 공을 때리면 얻는 이득보다는 불이익이 많은 법이다. 골프의 신이라고 하더라도 움직이는 공을 때릴 경우 정확성과 거리감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1조2항처럼 움직이는 공을 정지시켜놓고 치면 이득을 볼 수 있어 실격을 단서조항으로 달아놓았지만 움직이는 공을 규정한 14조5항에는 실격이 없는 것이다.

굳이 미켈슨의 이날 행동에 대해 실격처리하려면 경기위원회의 실격 재량권을 규정한 33조7항밖에 없을 것이다. 중대한 골프 에티켓 위반이다. 그런데 그가 과연 실격당할 정도의 매너 없는 행동을 했을까?

움직이는 공 때리는 건 실격 사유 안 돼 

실격시키려면 선수가 남몰래 규칙을 위반하기 위해 속임수(cheating)를 사용해 스포츠맨십을 어겼다는 팩트가 뒤따라야 한다. 이를테면 알까기, 동전 치기 등이다. 알까기는 친 공을 찾다가 남몰래 새 공을 던져놓고 찾았다고 하는 것이다. 동전치기는 그린 위에 올라간 공을 마크하면서 사용하는 동전 등을 홀 쪽으로 튀겨 조금이라도 가깝게 보내는 행동이다.

이런 행동은 어느 나라 선수에게서나 발견되고 있고 엄하게 벌칙을 주어 실격은 물론 자격정지 내지는 회원 제명 등의 엄중한 처벌을 받게 한다. 또 벌칙위반을 사실을 알면서도 해놓고도 이를 빼먹고 스코어를 제출하는 경우 실격처리한다.

골프를 하다가 화가 난다고 골프채를 집어 던지거나 상대방 선수나 경기위원에게 욕설을 퍼부을 경우 벌금이나 출전 정지 등의 불이익을 주는 데 그치지, 실격처리하지 않는다.

필 미켄슨은 단지 2벌타에 해당하는 다소 눈살을 찌푸릴 만한 행동을 한 것이지 에티켓 위반을 거론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앙포토]

필 미켄슨은 단지 2벌타에 해당하는 다소 눈살을 찌푸릴 만한 행동을 한 것이지 에티켓 위반을 거론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앙포토]

미켈슨은 모든 사람이 보는 데서 움직이는 공을 쳤지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니다. 단지 2벌타에 해당하는 다소 눈살을 찌푸릴 만한 행동을 한 것이지 에티켓 위반을 거론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의문이 남는다. 왜 미켈슨이 이런 엉뚱하고 심지어 비난을 자초할 돌출행동을 했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작심하고 이런 행동을 준비했다고 본다. 6번이나 US 오픈에서 준우승한 그는 이를 주최하는 USGA에 불만이 많았다.

코스 세팅을 너무 어렵게 해 변별력이 없게 만들었고 대회 우승이 골프선수의 기량과 관계없이 운수로 정해지는 것에 대해 항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게 나의 의심이다. 그리고 골프 룰을 잘 아는 그가 욕을 덜 먹고 벌타도 최소화하는 선에서 일을 벌이기로 준비한 다음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일을 벌인 것이다.

필 미켈슨, 지옥 코스의 부당함 공론화 의도 

공을 그린에 붙이기 어려운 홀에서 경사면을 타고 내려가는 공을 때려 코스 세팅의 부당함을 공론화하려고 한 것이라고 상정할 수 있다. 이는 그가 3라운드 직후 인터뷰한 내용에서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그는 “나는 룰을 잘 안다. 이전에도 이런 상황이라면 움직이는 공을 치고 싶었는데 결국 오늘 했다. 결례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내 의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우는 미켈슨이 13번 홀에서 홀에 잘 붙였다고 생각한 공이 경사면을 타고 내려오자 평소 가져왔던 불만이 폭발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고 욱하는 마음에 공을 쳤지만 자신도 그 행동에 당황했다는 가정이다. 끔찍한 일을 당하면 그런 상황을 피하는 데 급급한 것이 인간이다.

미켈슨이 US오픈에서 이런 경우를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고 그럴 때마다 공을 다신 그린에 올리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는지 모른다. 그런 것이 쌓였고 나름 그런 경우에 대비했는데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이런 가정은 대회 5일 뒤에 있는 미켈슨의 공식 사과에 깔려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난 주말 분노와 좌절감 대문에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내 행동으로 인해 당혹스럽고 실망했다. 사과한다”고 밝혔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미켈슨의 입장을 이해한다. 평소 평판이 훌륭한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가 지옥 코스처럼 세팅된 USGA 오픈 대회의 코스에서 꼼짝없이 인간다운 나약함을 보여준 것 같아서다. 이번 사건은 미켈슨의 사과로 그냥 넘어가면 좋겠다.

민국홍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중앙일보 객원기자 minklpga@gmail.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