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는 검은 돈의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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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탄생한 섬.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무대가 된 섬.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인구 74만명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천국'이라는 데, 과연 살기 좋은 천국일까, 아니면 돈세탁의 천국일까.

포브스 최신호는 키프로스의 '두 얼굴'을 집중 분석했다. 키프로스는 제2의 룩셈부르크.스위스.케이맨제도 등 세금 천국을 꿈꾸며 세계 자본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곳엔 밀수.돈세탁.무기거래.테러 자금 등 불법적인 돈도 넘쳐난다.

키프로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선 법인세율이 10%로 가장 낮다. 게다가 외국 기업에겐 4.25%의 특별 세율을 적용해주고 있다. 또 33개국과 이중과세 방지 협정을 맺었다.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중동을 이어주는 관문 역할을 하는 덕분에 사업에도 유리하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파트너 회사를 운영하는 티모시 오스번은 세제 혜택 등을 이유로 최근 사무실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로 옮겼다.

이렇게 키프로스에 신설되는 법인은 지난해에만 1만4500개. 2002년 이후 3년 새 70%나 늘어났다. 기업들이 새로 생겨나면서 일자리는 늘어났고, 6억 달러의 세금이 더 걷혔다.

그러나 담배 밀수, 돈 세탁, 무기 거래, 심지어 테러 자금 세탁의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키프로스에 드리워진 그늘이라고 포브스는 전했다.

지난달 유고슬라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감옥에서 숨진 후, 8억 달러(약7500억원)에 이르는 '수상한' 돈이 발견됐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이 돈은 키프로스에 위치한 8개의 회사를 통해 룩셈부르크.스위스 등 50여 개국 250여개 계좌로 쪼개져 숨겨져 왔다. 주로 미국.러시아.이스라엘 등에서 무기 구입을 위해 쓰여졌을 것으로 보이는 이 돈이 키프로스를 거점으로 분산된 셈이다.

키프로스는 또 1990년대 사담 후세인에 무기공급을 도와주는 14개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러시아 마피아 자금도 상당부분 이 나라를 통해 돈세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코스의 전 회장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도 키프로스에 세운 위장회사를 통해 해외 사업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자금을 분산시켰다.

매년 2000여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매춘을 위해 입국하는 것도 문제다. 매춘 시장 규모만 7억 달러에 달한다고 잡지는 전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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