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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금리 손본다는 금감원, 대출금리 인하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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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금융감독원이 ‘대출금리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어떻게 정했는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적절한지를 면밀히 감독하겠다고 예고했다. 그 어디에도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말은 없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를 금리 인하 압박으로 받아들인다.

은행 가산금리엔 이익률 등 선반영 #정부, 대출금리 결정 과정 공개 요구 #과한 인상 판단 땐 업무 지도 예고 #시장선 사실상 당국 개입으로 여겨 #“경쟁활성화 통해 낮추는게 바람직”

금감원은 21일 은행 대출금리 산정체계 점검 결과 및 향후 감독 방향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지난 2~3월 9개 국내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SC제일·씨티·농협·기업·부산)을 대상으로 대출금리가 적정하게 산출됐는지 실태를 점검했다. 최근 금리 인상기 은행들이 과도하게 대출금리를 올리는 측면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정해진다. 기준금리는 은행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대출금리를 낮추려면 가산금리를 손봐야 한다. 가산금리는 8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①업무원가 ②법적 비용 ③리스크 프리미엄 ④유동성 프리미엄 ⑤신용 프리미엄 ⑥자본비용 ⑦목표이익률 ⑧가감 조정금리 등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은행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가산금리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게다가 항목이 많고 결정 과정이 복잡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금리가 제대로 책정됐는지 알기 어렵다.

금감원 조사 결과 은행들이 부당하게 높은 대출금리를 부과한 사례가 여럿 발견됐다. 자영업자 A씨는 지난해 3월 3000만원의 담보대출을 받으면서 8.6%의 대출금리를 적용받았다. 담보대출인데도 금리가 꽤 높다고는 생각했지만 은행이 알아서 정했거니 하고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은행이 담보를 잡아놓고도 전산에는 담보가 없다고 입력해 대출금리를 2.7%포인트 더 받아왔다. 여기에 소비자가 이자를 깎아 달라고 했더니(금리 인하 요구권 행사) 기존에 받던 우대금리를 이유 없이 축소한 사례도 있었다.

금감원은 대출금리 산정체계 및 운용이 불합리한 은행에 대해서는 업무개선을 지도할 계획이다. 또 금융위원회·금융연구원 등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모범규준과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아울러 대출금리 산정과 관련한 정보 제공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금은 소비자가 대출을 받으면 기준금리 1.7%에 가산금리 2.5%포인트 등 최종 숫자만 알 수 있다. 앞으로는 이에 더해 ‘부수거래 우대금리’를 항목별로 제공한다. 부수거래 우대금리는 월급통장을 만들면 0.2%포인트, 신용카드에 가입하면 0.1%포인트 등으로 대출금리를 깎아주는 것을 말한다.

또한 얼마나 깎아주는지를 은행별로도 쉽게 비교할 수 있게 만든다. 현재 은행연합회 사이트에서 은행별 대출금리를 공시하는데, 앞으로 가산금리를 가산금리와 가감 조정금리(부수거래 우대금리 및 지점장 전결 등)로 구분해 공시할 계획이다.

금감원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지금처럼 은행들이 과도하게 수익을 올려도 소비자가 알 수 없는 환경에서는 금융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이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15일 시장 전문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금융회사가 높은 수준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발휘해 가계·중소기업과 고통을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이 올린 과도한 수익은 결국 가계·중소기업의 주머니로부터 나왔으니 이들에 대한 대출이자를 낮추는 식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은행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 행태에 대해선 비판이 거세다. 현재 대출의 대부분은 변동금리다. 변동금리는 향후 금리 변동에 대한 리스크를 소비자가 떠 안는 구조다. 그런데도 은행이 리스크 부담의 명목으로 현재 받고 있는 예대금리 차이는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반면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이 지적한 사항은 일부 영업점 직원의 실수에 불과한데도 은행권 전체를 비도덕적 집단으로 몰아가면서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 당국이 대출금리 점검에 나선 상황이나 배경은 이해하지만 길게 보면 금융산업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출금리는 금융 당국의 시장 개입이 아니라 경쟁활성화를 통해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신용대출 금리를 내린 것은 카카오뱅크가 출범한 지난해 7월이다. 전세자금대출 금리 상승세가 주춤해진 것도 지난 1월 카카오뱅크가 최저 금리 수준으로 ‘전·월세보증금 대출’을 출시하면서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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