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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TV 끄기 식욕 참기보다 어렵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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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견물생심 ! TV를 치워라

김종진(44.경기도 용인시 수지1지구)씨의 집에선 TV 소리가 사라진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TV를 켜 놓았던, 자칭 'TV 맹독자' 김씨는 지난해 3월 '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예담)를 읽고 단번에 TV 코드를 잘라 버렸다. '이대로 살다간 내 자식들까지 TV에서 못 헤어나겠구나'라는 위기감에서였다. 볼 수가 없으니 갈등도 없었다. 김씨의 세 자녀(초등 6.4년, 여섯 살)도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 후 김씨는 TV를 아예 양로원에 기증해 버렸다.

TV를 천이나 상자로 덮어 두는 것도 방법이다. 이유진(34.여.경기도 화성시 반월동)씨는 한 달 전 TV에 퀼트덮개를 만들어 씌웠다(사진). 처음엔 30개월 된 딸 영현이가 TV를 틀어 달라며 칭얼대기도 했다. "혼자 비디오테이프를 밀어넣고 TV를 켜기도 하더라고요. 몇 번 그러더니 소리만 들리지 화면은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이젠 별 관심을 보이지 않네요."

리모컨을 치우는 것만으로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이현석(38.서울 안암동)씨는 리모컨이 고장나면서 자연스럽게 TV와 멀어지게 된 경우. 이씨는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려보지 못하니 TV 보는 시간이 확 줄었다"며 "일부러 고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TV를 없앨 용기가 없다면 일단 거실 한가운데 놓인 TV를 집안 구석으로 치워 보자.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거실에 책장을 놓아 서재처럼 꾸미면 금상첨화다.

#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모든 중독현상이 그렇듯이 TV도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금단현상이 심하다. "애가 TV를 너무 좋아해 TV를 못 없앤다"는 말은 핑계다. 대부분 어른이 더 못 견딘다.

지난해 120가족을 대상으로 나흘 동안 TV 안 보기 운동을 벌였던 경남 마산시 YMCA 아기스포츠단 이윤기 부장은 "유아기 어린이는 교사의 지도에 따라 TV 안 보기를 쉽게 받아들인다"며 "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위 형제들이 TV를 켜자고 난리를 치고, 할머니.할아버지는 이런 운동을 왜 하느냐며 취지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아이와 TV 안 보기 운동을 시작할 땐 아이 눈높이에 맞춰 이벤트를 벌인다. 시작은 서약서 작성. ▶○일부터 ○일 동안 TV를 보지 않는다▶TV를 안 보는 대신 더욱 신나게 지내겠다 등이 적힌 서약서에 가족이 모두 손도장을 찍어 거실에 붙여 둔다. 약속을 잘 지켰을 경우 아이에게 줄 상도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좋다.

3대가 함께 사는 경우엔 할아버지.할머니 설득하기가 관건이다. TV 안 보기 시민모임의 인터넷 카페(cafe.daum.net/notvweek)에도 "시부모님 방에서 계속 TV 소리가 나니까 아이들이 방에 슬쩍 들어가서 안 나오네요. 매번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잔소리맘) 등의 고민이 줄을 잇는다. 이 모임의 회원인 이모(35)씨는 함께 사는 장모의 반대로 TV를 없애지 못했다. "장모님이 '노인 사정 모르는 소리'라며 하루종일 TV를 켜 놓으신다"며 속상해 했다.

이 모임의 대표인 서영숙 숙명여대 교수는 "노인들의 삶에도 TV는 부정적"이라며 "TV 볼 시간에 산책.서예 등 취미생활을 하거나 집안일을 함께하는 것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방법이므로 자식 입장에서도 소신을 갖고 부모님께 TV 안 보기 운동을 제안하라"고 말했다.

# 더 재미있게, 더 유익하게

그렇다면 TV를 안 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 모임이 내놓은 올해의 캐치프레이즈 'TV는 순간, 독서는 한평생'에서 알 수 있듯 우선 책 읽을 시간이 생긴다는 것. 김종진씨도 "TV를 없애기 전에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엔 월 평균 20권씩 읽는다"고 말했다.

이유진씨 집도 마찬가지. 이씨의 남편 이충하(39)씨는 "TV를 안 보니 시간이 많이 남더라"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만들기 등을 함께하는 등 퇴근 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임은 독서 외에도 TV 대신 즐길 활동으로 ▶앨범 정리▶노래 연습▶박물관 순례▶연극.영화 보기▶주말 사회봉사▶DIY 가구 만들기▶서점.도서관 방문▶화초 가꾸기▶요리하기▶편지.일기 쓰기▶춤 추기▶ 악기 배우기▶부모.자녀 일대일 데이트 등을 제안했다. '즐거움의 원천을 TV 속 가상현실에서 실제 삶으로 옮기라'는 주문이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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