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400억대 … 조성 경위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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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20일 오전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현대차 본사 차원에서 조성한 비자금 규모가 4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20일 "현대차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임직원들에 대한 조사에서 현대차 본사가 500억원에 약간 못 미치는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비자금 관리 계좌로 의심되는 3~4개의 차명계좌를 쫓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현대차 임원 K씨 등을 조사하면서 "세 개 정도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개인 돈을 관리해 왔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 "업무상 횡령, 조세포탈 등 혐의조사"=검찰은 이날 소환된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상대로 ▶비자금 조성 ▶계열사 부실채무 탕감 ▶경영권 편법 승계과정 등을 캐물었다. 특히 정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의 운영과 지분변동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이미 글로비스의 이주은 사장을 가짜 세금계산서 발행과 외국 업체와의 허위 거래계약서 작성 등을 통해 71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횡령)로 구속기소했다. 글로비스가 비자금 조성의 주요 창구라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을 김동훈(구속)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에게 전달, 산업은행 고위층 등에 로비해 500여억원에 이르는 부실 계열사의 채무를 탕감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정 사장이 지분을 늘리기 위해 '종자돈'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글로비스를 활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01년 설립된 글로비스는 그룹 차원에서 몰아준 일감으로 회사가치가 폭등했다. 정 사장은 2004년 2월 글로비스의 지분 25%를 팔아 1000억원을 확보한 뒤 기아차 주식 1.01%를 매입했다. 글로비스 설립 당시 정 사장이 투자한 돈은 7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검찰 관계자는 "글로비스 설립 당시 비자금이 들어갔다면 업무상 횡령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며 "세금포탈과 뇌물혐의도 수사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정 사장에게서 글로비스 비자금 조성에 일부 관여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 의혹에 대한 정의선 사장의 진술을 토대로 정몽구 회장이 책임져야 할 범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김동진 부회장 등 현대차 임직원들이 (비자금 조성을) '자기가 다 했다'고 진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총수 일가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검찰 관계자는 "정 사장이 미리 준비한 메모를 참고하면서 성실히 조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 정의선 사장은=정 회장의 외아들이다.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친 뒤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을 알아야 한다는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다. 1999년 말 현대차 자재본부 이사로 그룹에 합류했다. 2002년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 전무를 지냈고 지난해 초 기아차 사장 겸 그룹 기획총괄본부 사장이 됐다. 기아차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과 슬로바키아 공장 건설 계획을 기획하는 등 기아차의 해외 사업을 지휘했다. 과장급과도 그룹 운영에 대해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는 등 소탈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종문.문병주 기자 <jmoo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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