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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에 상처받는 지방선거 후보들…면전에서 ‘얼평’도

중앙일보

입력

출마한 여성후보에 "정치하면 애는 누가 키우고?" 

김포시 시의원에 출마한 김계순 후보(더불어민주당)가 유권자에게 명함을 돌리고 있다. (김계순 후보 제공)

김포시 시의원에 출마한 김계순 후보(더불어민주당)가 유권자에게 명함을 돌리고 있다. (김계순 후보 제공)

6.13지방선거에서 경기도 김포시 시의원에 출마한 김계순(37·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유권자를 만날 때마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15년간 민주당에서 당직자 활동을 하며 쌓아온 경력이 여성 후보란 이유만으로 무색해질 때가 있다는 게 김 후보의 설명이다. 그는 종종 유권자들과 아래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김 후보 결혼은 했고?) 네, 아이가 둘입니다"

"(정치하면 애는 누가 키우고?) 저는 복이 많아 시부모님이 키워주십니다"

김 후보는 이런 질문에 대비해 시부모님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다는 모범답안도 만들어놨다. 하지만 엄마의 역할을 강조하는 짖궂은 유권자를 만날 때면 김 후보의 마음에는 작게나마 상처가 남는다.

김 후보는 유권자들이 여성 후보는 '가족을 등한시하는 엄마'로 남성 후보는 '열정있고 패기넘치는 청년'으로 바라보는 게 속상하다고 한다. 그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시민들이 비슷한 또래의 남성 후보에겐 '정치는 젊었을 때 하는 거야'라고 격려를 해주시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김 후보는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아 괜찮다"며 "여성이자 엄마로, 또 아내이자 며느리로서의 경험이 생활 정치에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지방선거 소수자 후보가 전하는 '차별의 경험담' 

중앙일보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비해 관심은 덜하지만 '바닥 민심'을 샅샅이 훑으며 시민들과 마주하는 기초의원 여성 후보와 장애인 등 소수자 후보에게 '차별의 경험담'을 물었다.

이들은 "실제 혐오 발언을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도 "결혼과 육아부터 외모 평가까지 여성 후보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깐깐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연락처를 집요하게 묻는 시민부터 "화장은 꼭 하고 다녀라", "인중에 난 털이 거슬린다"는 막말까지도 2주간 유세를 벌인 이들에겐 어느덧 익숙한 대화에 속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구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곽승희 후보(오른쪽)가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곽승희 후보 제공)

서울특별시 금천구 구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곽승희 후보(오른쪽)가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곽승희 후보 제공)

서울 금천구 구의원에 출마한 곽승희(31·무소속) 후보는 유권자에게 명함을 돌릴 때마다 '얼평(얼굴 평가)'를 받는게 일상이 됐다고 했다. 곽 후보는 "'얼굴이 예쁘다, 애인은 있느냐'로 시작해서 개인 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유권자가 있다"며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여성 후보들의 경력이나 능력보다 외모가 주목을 받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라고 했다.

한 유권자가 금천구 구의원에 출마한 곽승희 후보에게 개인 연락처를 물어보고 있다. 곽 후보는 의정용 핸드폰을 별도로 개설했다. (곽승희 후보 제공)

한 유권자가 금천구 구의원에 출마한 곽승희 후보에게 개인 연락처를 물어보고 있다. 곽 후보는 의정용 핸드폰을 별도로 개설했다. (곽승희 후보 제공)

곽 후보는 "유세 초기에 그런 말을 들으면 예쁘고 젊은만큼 제대로 된 청년 정치를 해보겠다고 답했지만, 지칠 때면 그냥 감사하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분은 화장을 꼭 하고 다니라던지, 인중에 털이 거슬린다는 황당한 말을 하시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며 "이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구의원으로 출마한 이경환(32·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오른팔이 없는 장애인이다. 이 후보는 "유세 중에 차별적인 발언을 들은 경우는 아직 없다. 오히려 격려를 더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같은 소수자라 할지라도 한국 사회에서 아직 장애인에 대해선 시혜적 시선이, 여성에 대해선 모멸적 시선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시민분들께서는 자연스럽게 하시는 말씀일지라도 후보들의 마음엔 상처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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