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업고 출신 대학진학이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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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연세대에 입학한 실업고 출신 학생 상당수가 물리 등 기초과목을 따라가지 못해 포기했다고 한다. 실업고 졸업생은 정원 외 3% 범위 내에서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실업고 출신 학생이 수업을 못 따라간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번에 입증됐다.

이 전형은 권고사항이지만 대부분 대학이 시행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실시한다는 대학도 있다. 이것은 대학이나 실업고 출신 학생 모두에게 엄청난 낭비다. 대학은 이들 학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 많은 실업고 출신 학생은 희망 전공을 택하지 못하거나 중도 탈락한다고 한다.

실업고 특별전형은 학생들의 대입 욕구를 충족시켜 실업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실업고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67%에 이른다. 특혜를 받고도 실력 부족으로 낙방하는 학생이 많아 해당 정원을 못 채운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당리당략 차원에서 즉흥적으로 "실업고 특별전형 비율을 정원 내 10%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다 비판 여론이 높자 '정원 외 5%'로 늘리기로 교육인적자원부와 합의했다. 대학들에는 실업고 학생을 많이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실력 부족으로 수업을 못 따라가니 피해를 보는 것은 대학과 실업고 출신 학생 자신들이다. 대학 교육의 낭비와 학생들의 좌절감.방황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실업고 학생들의 대학 진학 욕구는 현재 정도의 특혜만으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실업고 설립 목적은 산업 기능인력 양성에 있다. 그러나 실업고 교사.학부모들은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한 학생이 실업고에 간다는 사회 편견이 가장 무섭다"고 말한다. 해결책은 억지로 대학에 보내려 할 게 아니라 기능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실업고의 교육 여건을 대폭 개선해 우수 인재를 키우고, 실업고를 나와도 대학 졸업생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