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아도 그림에 소리 담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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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임영진 군(오른쪽)과 담임 교사 박상대씨.

임영진 군(오른쪽)과 담임 교사 박상대씨.

“제가 사는 세상엔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게 좋습니다. 그림 한장에 친구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도, 할아버지가 해주는 다정한 격려의 말도 담을 수 있어요. 물론 엄마의 잔소리도요.”

대구교육청 노력상 받은 임영진 군 #어릴 때 할아버지 만화방서 꿈 키워

청각장애 2급인 대구영화학교 3학년 임영진(18) 군은 지난달 21일 대구교육청에서 ‘노력상’을 받았다.

대구교육청은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효행·봉사·노력 부문에서 총 5명의 학생을 선정해 상을 수여했다. 임군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청각장애를 노력으로 극복하고 있기에 노력상을 받게 됐다. 지난 4일 대구 남구 대명동 대구영화학교에서 임군을 만났다.

상을 받은 소감은.
"떨렸다. 5명 중 장애가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나.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에 만화방이 있었다. 가게는 아니고, 만화책을 쌓아둔 작은 방이었는데 그곳에서 만화를 보면서 컸다. 사춘기가 오면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힘들었을 때 그림을 그리면서 감정을 해소했다. 그림에는 내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환경을 주제로 그린 임영진 군의 작품.

환경을 주제로 그린 임영진 군의 작품.

임군은 태어날 때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임군의 부모는 그를 일반학교에 보냈다가 임군이 고1 때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하면서 청각장애학교인 대구영화학교로 보냈다. 그의 담임교사도 임군이 기특하다고 했다. 보통 청각장애 학생은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평범한 직업도 꿈의 직장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임군은 끝까지 이 ‘평범한’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박상대(45) 담임교사는 “졸업한 선배 대부분이 생산현장에 가는 모습을 보며 후배도 꿈을 접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력하는 영진이가 멋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꿈을 가지게 해준 할아버지에게 고마워 할아버지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선물해 드렸을 때 너무 행복했다. 그림 한 장에 행복과 희망을 담아내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 나중에는 청각장애를 지닌 다른 친구들에게 ‘너희도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고 싶다.” 

대구=글·사진 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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