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개조 견인차 거리 활보 왜?…뒷돈 받은 차량검사소 적발

지난 2월 24일 밤 0시40분쯤 인천시 서구의 한 교차로. 빨간색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견인 차량(렉카)이 옆에서 나온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오토바이를 운전한 박모(29)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경찰,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자동차정비검사소 조사 중 #검사소 관계자와 견인차량 운전자 670여명이 대상 #뒷돈 받고 불법 개조 견인차량 600여대 검사 통과 #입소문에 전국에서 견인차량 기사 몰리기도

견인 차량 기사 김모(25)씨는 "사람이 없어서 달렸는데 옆에서 나온 오토바이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당시 김씨의 견인 차량은 소음기는 물론 LED 작업등을 부착하는 등 불법 개조된 상태였다. 자동차의 출력을 향상하기 위해 엔진이나 자동변속기 등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전자제어 장치인 'ECU(electronic control unit) 맵핑'도 했다.

이런 차량의 경우 차량검사 시 배출가스 부분이나 불법 튜닝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기 때문에 운행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차는 버젓이 경기도 안양의 한 위탁 자동차정비검사소로부터 '합격' 판정을 받아 거리를 누볐다.

인천지방경찰청 전경.

불법 개조한 견인 차량의 기사들에게 뒷돈을 받고 종합·정기검사에서 합격 처리해 준 위탁 자동차검사소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 검사소는 "돈만 내면 검사에서 통과된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전국에서 온 견인 차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민간 자동차검사소는 각 지방자치단체 단체장의 지정을 받아 검사를 대행해주는 기관이다.

인천지방경찰청 교통조사계는 4일 자동차 관리법 위반 혐의로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한 자동차정비검사소의 검사팀장 A씨(60)를 입건하고 같은 혐의로 이 검사소의 대표 B씨(65)와 검사원 C씨(32)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검사소에 차량 검사를 맡긴 견인 차량 운전기사 674명도 수사하고 있다.

적발된 자동차검사소가 불법 개조된 차량을 검사하는 모습. 불법 부착된 LED작업등에 검정색 테이프를 부착 후 검사하고 있다. [사진 인천지방경찰청]

불법 개조된 견인 차량의 현재 모습 [사진 인천지방경찰청]

A씨 등은 2016년 8월부터 최근까지 B씨가 대표로 있는 위탁 검사소에서 불법 개조된 견인 차량 운전기사들에게 대당 5만~12만원을 받고 정상 차량인 것처럼 통과시켜 7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이 기간에 통과시킨 불법 개조 차량만 600여대가 넘는다.

견인 차량 기사들은 사고 현장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차량의 출력장치를 조작하거나 LED 작업등이나 경광등, 사이렌을 불법으로 설치한다. 휠·타이어를 돌출시키고 보조 바퀴를 제거하는 등 차량 외관을 불법 개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단속되면 자동차 관리법 34조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정식 자동차검사소는 이런 불법 개조 차량에 부정합 판정을 내린 뒤 문제점을 개선해 재검사를 받도록 한다. 그래서 일부 견인 차량 기사들은 차량 불법 개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탁 자동차 검사소를 찾는다.

A씨 등은 이런 점을 노렸다. 이들은 검사소 내 감시용 카메라의 촬영 각도를 조정하거나 불법 개조된 부위를 검은색 테이프를 붙이는 수법으로 불법 개조된 견인 차량을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꾸며 검사를 통과시켜줬다. "10만원 정도만 내면 검사에서 통과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견인 차량 운전기사들이 몰려오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검사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적발된 자동차검사소가 불법 개조된 차량을 검사하는 모습. [사진 인천지방경찰청]

불법 개조된 차량의 현재 모습 [사진 인천지방경찰청]

경찰은 A씨 등에게 금품을 주고 불법 검사를 의뢰한 견인 차량 기사 674명의 인적사항을 확보해 이 중 187명을 조사, 입건했다. 나머지 견인 차량 기사들도 차례로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또 일부 법인 견인 차량 업체들이 개인에게 사업용 차량의 번호판을 임대해 개인이 기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등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점을 확인해 관련 기관에 제도 보완을 요청했다. 각 지자체에도 불법개조했는데도 정상 차량으로 통과된 견인 차량 252대에 대한 임시검사를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검사팀장 A씨의 경우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대표 B씨는 '부정검사는 인정하지만, 돈을 받았는지는 몰랐다'고 일부 혐의만 인정한 상태"라며 "먼저 A씨에 대해 자동차 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B씨도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