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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천안문 학살 진상 규명을” 천안문 어머니회 시진핑에 촉구

중앙일보

입력

“29년 동안 역대 정부 누구도 (우리의) 안부를 묻지도 사과하지도 않았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학살은 마치 일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됐습니다.”

“먹으로 쓴 거짓은 피로 쓰인 사실 덮을 수 없다”며 항의 #당시 영국 외교문서 “6·4 당시 홍콩의 중국 정체성 출현” #중국 정부는 “홍콩이 중국 전복의 기지될 수도” 우려

1989년 6·4 천안문 사태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천안문 어머니회 회원들. 이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6·4 유혈사태의 재평가를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사진 중국인권 웹사이트]

1989년 6·4 천안문 사태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천안문 어머니회 회원들. 이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6·4 유혈사태의 재평가를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사진 중국인권 웹사이트]

지난 1989년 6월 4일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자행된 유혈 진압으로 희생된 유족들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공개편지로 6·4 천안문 사태의 재평가를 촉구했다.

천안문 어머니회 소속 유족 128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51명과 연명으로 작성한 편지는 중국 당국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미국 뉴욕에 서버를 둔 ‘중국인권’ 사이트를 통해 지난달 31일 공개됐다. 유족들은 시진핑 주석의 발언까지 인용하며 각성을 촉구했다.

편지는 “시대는 출제자, 우리(공산당)는 응시자, 인민은 채점자”라는 시 주석의 올 초 발언을 가져와 “89년 6월 4일의 천안문이 제출한 시대의 문제를 공산당원이 시대에 부끄럽지 않고 인민을 저버리지 않는 답안을 어떻게 내놓을 것인가”라고 물은 뒤 “채점을 기다리고 있다”며 압박했다.

유족들은 “6·4의 비극은 이미 역사가 됐지만, 재난은 끝나지 않았고 상처는 갈수록 아물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6·4의 역사는 이미 금기시되면서 6·4 유족은 바깥으로 밀려난 고난의 단체가 됐다”며 “우리를 살피는 이는 오직 공안과 정보기관뿐”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천안문 유혈진압 사태는 국가가 인민에 대해 저지른 범죄 행위로, 반드시 천안문 참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 법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며 진상 규명·배상·문책을 촉구했다.

천안문 사건의 진상 규명에 앞장서 온 샤론 홈 홍콩의 인권운동가는 “지금은 중국 민중이 종사한 정의로운 사업을 지지할 결정적인 시점이며 진실은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며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의 “먹으로 쓴 거짓은 피로 쓰인 사실을 덮을 수 없다”는 말을 인용했다.

홍콩 6·4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드러난 6·4 - 개혁개방 40주년과 6·4“ 전시회 포스터. [사진 6·4기념관 페이스북]

홍콩 6·4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드러난 6·4 - 개혁개방 40주년과 6·4“ 전시회 포스터. [사진 6·4기념관 페이스북]

한편 홍콩의 ‘6·4 기념관’에서는 ‘드러난 6·4, 개혁개방 40년과 6·4’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시사지 아주주간 최신호가 보도했다.
전시회에는 최근에 새롭게 비밀 해제된 데이비드 윌슨(83) 당시 홍콩 총독이 영국 외교부에 보낸 전문이 전시됐다. 89년 7월 베이징 학생운동이 홍콩 시민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윌슨 총독은 “베이징 학생운동은 홍콩 역사상 전례 없는 대형 가두시위를 촉발했다.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참가 인원이 50만 명을 넘었다”며 “홍콩 시민에게 중국인이란 강력한 정체성이 출현했다”고 진단했다. 유혈 진압 직후 홍콩의 반응은 급변했다.

문건은 “학생운동이 진압된 뒤 홍콩인의 앞길에 대한 믿음이 엄중히 파괴됐다”며 “1997년 이후 홍콩 내정에 간여할 수 없도록 중국 정부가 홍콩시민에게 더욱 구체적으로 보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중국 중앙정부 역시 홍콩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주시했다. 전문은 “인민일보 평론이 홍콩정부가 홍콩 시민지원 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 정부를 전복할 기지가 될 수 있다”며 “당시 시위 주동자들이 민주를 고취해 공산주의를 배척하고 홍콩 독립을 제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영국 외교부가 비밀해제한 1989년 홍콩 총독이 영국 외교부에 보낸 전문. 천안문 사태가 당시 홍콩 사회에 끼쳤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진 인터넷 캡처]

최근 영국 외교부가 비밀해제한 1989년 홍콩 총독이 영국 외교부에 보낸 전문. 천안문 사태가 당시 홍콩 사회에 끼쳤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진 인터넷 캡처]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 6·4 천안문 유혈 사태는 중국에서는 공개 토론이 금지됐다. 89년 6월 4일 공산당 중앙의 명령으로 진압에 투입된 탱크와 민주화 시위대의 유혈 충돌로 천 명 이상의 비무장 학생과 시민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당시 희생자가 밀집됐던 베이징 지하철 1호선의 무시디(木樨地)역 서북쪽 출구는 3일 오후 1시부터 막차 운행 때까지 통행이 봉쇄됐다고 홍콩 명보가 보도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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