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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시장 ‘굴기’에 중국서 자취 감춘 한국산, 국내 시장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산

중앙일보

입력

중국 전기차의 급격한 성장에 한국산 전기차가 현지에서 자취를 감췄다. 중국 토종 브랜드의 약진과 중국 정부의 자국산 살리기 정책 때문이다. 중국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 전기차 업계를 주도하려는 중국의 야심이 본격화되면서 우리나라 내수시장에도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전기차 전세계 대중화 대비한 중국의 행보 #4년 동안 40배 가까이 성장한 중국 전기차 시장 #현지 생산으로 방향 틀어 중국 생태계로 들어간 글로벌 업체들

중국 전기차 시장은 커졌는데, 쪼그라든 중국 내 수입 전기차

중국 전기차 시장의 급격한 팽창은 수치에서 드러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2013년 1만4600대, 2014년 4만5000대, 2015년 24만8000대, 2016년 40만9000대, 2017년 56만9000대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4년 동안 39배가량의 증가세로 중국 시장 규모는 전 세계의 약 40%에 해당한다. 코트라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2020년 중국에는 연간 123만5000대의 전기차 판매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500만 대 보급과 연간 생산능력 200만 대를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성장했지만, 한국산 등 기존 글로벌 브랜드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2015년 16만1725 달러(약 1억7400만원)를 기록한 한국의 전기차 대(對)중국 수출액은 2016년 10만7380 달러(약 1억1600만 원)로 33.6% 감소한 데 이어 2017년은 실적이 전무했다. 수출 대신 현지 생산으로 방향을 튼 결과라는 게 국산차 업계의 설명이다.

중국 전체 전기차 수입액도 2015년 2억198만 달러(약 2176억원)에서 2016년 9억229만 달러(약 9720억원)로 346.7% 증가하다가 2017년 458만 달러(약 49억원)로 99.5%가 쪼그라들었다. 중국 내 상위 20개 차종 중 수입 브랜드는 17위를 차지한 테슬라 모델S가 유일할 정도로 자국산 편중 현상이 심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자국산 장려 정책

전기차를 놓고 중국산과 수입산의 실적 명암이 짧은 기간 극단적으로 갈린 데에는 전기차 ‘굴기(堀起)’를 향한 중국 정부의 전략적 행보가 자리하고 있다. 2017년 도입한 전기차 의무생산제도가 대표적이다. 중국 완성차 제조업체는 2018년 8%에서 시작해 2020년까지 매년 2%씩 전체 생산 수량 대비 전기차 생산 비중을 늘려야 한다. 인프라 정비도 한창이다. 2020년까지 1만2000곳에 480만 대의 충전기를 설치하고, 현재 충전기 1기당 차량 3대인 비율을 1대1 비율로 늘릴 계획이다.

자국산 장려 정책도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산 판매를 위해 1대 10만 위안(약 1680만원)까지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을 차 가격이 아닌 배터리 성능에 따라 책정되도록 했다. 고가의 수입 전기차 입장에선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싼 차라도 차 가격에 비례해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 유통업체를 통해 중국으로 들여오는 벤츠는 관세 등으로 인해 미국 판매가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경우도 있다”며 “보조금 혜택이 미미해 중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이후 중국 정부가 뚜렷한 이유 없이 한국산 배터리 탑재 차량에 보조금 지급을 하지 않는 점도 자국산 전기차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95년 배터리 회사로 출발한 비야디(BYD)는 이 기간 배터리 등 부품을 수직계열화해 중국 전기차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2016년 10만 대에서 2017년 11만4000대로 전년 대비 13.4% 증가세를 보이며 4년간 중국 전기차 시장 1위를 유지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김주철 코트라 창사무역관장은 “2016년 중국 전기차 업계의 연구개발(R&D) 투자액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인 300억 위안(약 5조520억원)을 넘어선 바 있다”며 “관의 정책적 지원에 민간이 호응한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의 무서운 성장세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도 중국 업체로 기울고 있다. 2017년 판매량 기준 글로벌 전기차 상위 10개 업체에 비야디(2위), 베이징자동차(BAIC·3위), 지리차(吉利·GEELY·4위), 상하이자동차(8위) 등 중국 업체 4개가 이름을 올렸다. 또 글로벌 전기차 모델 판매량 상위 20개 중에서 중국 토종 모델이 9개에 달했다.

비야디의 대표 전기차 모델 e6. [중앙포토]

비야디의 대표 전기차 모델 e6. [중앙포토]

글로벌 전기차 업체의 중국 내 생태계 자발적 진입

최근 중국은 자국산 밀어주기를 넘어 글로벌 전기차 업체를 자국 생태계로 끌어들이는 데까지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외국인 투자산업 지도목록을 발표하면서 순수 전기차의 합자 기업 개수에 관한 제한을 없앴다. 중국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는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에 현지 업체와 합자를 하도록 우회 전략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합자법인 베이징현대를 통해 5월부터 위에동(한국명 아반떼)을 현지 생산하고 있다. 중국 시장 점유율 2위인 지리차는 스웨덴 볼보 인수 후 전기자동차 합자회사 ‘GV오토모빌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지리차는 올해 벤츠를 생산하는 다임러AG의 지분을 매입했고, 전기차 개발을 위한 연합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은 내년 전기차 생산을 위해 중국 국영 기업인 JAC자동차와 합작 사업을 설립하기로 했다. JAC는 5년 내 15개 전기차 모델을 개발하고 2025년까지 전체 매출의 30%를 전기 자동차로 채울 방침이다.

중국에서 현지 생산에 들어간 베이징현대의 위에동. [중앙포토]

중국에서 현지 생산에 들어간 베이징현대의 위에동. [중앙포토]

전기버스 등 우리나라 전기차 업계의 약한 고리 노리는 중국

중국 전기차 업체의 굴기에 한국 전기차 시장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이미 한국 시장을 겨냥해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비야디는 제주도를 거점으로 한국에 전기버스를 보급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비야디의 e버스-7은 지난 4월부터 제주 우도에 관광용 버스로 판매돼 현재 20대가 운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개별 수입사를 통해 국내에 판매된 중국산 전기버스가 100여대에 달하고 업체는 5곳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재용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장은 “현대차 아이오닉 같은 준중형 승용 전기차보다 버스와 트럭 등 상용 전기차에선 국내 수준이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중국 업체 역시 국내 상용 전기차 시장을 공략이 수월한 '약한 고리'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BYD가 만든 전기버스의 모습. [중앙포토]

BYD가 만든 전기버스의 모습. [중앙포토]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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