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거래 꿈도 꿀 수 없는 일" 의혹 전면 부인한 양승태

중앙일보

입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70) 전 대법원장이 1일 갑작스레 기자회견을 자청한 건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발표 이후 재임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판 거래' 의혹, 검찰 수사까지 거론되자 #퇴임 8개월 만에 기자 회견 자청, 입열어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시행도 부인 #"검찰이 수사한다고 합니까?" 되묻기도

자신과 당시 사법행정 수뇌부들에 대한 형사 고발이 이어지며 검찰 수사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다, 법원 내부 혼란을 넘어 사법부 전체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확대되자 진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도 일선 판사들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충격과 비참함을 느낀다”는 취지의 메일을 보냈다. 법조계에서는 전ㆍ현직 대법원장이 같은 날 상반되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해 충돌 양상까지 빚은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은 회견 2시간 전 일부 기자들에게 연락해 입장을 발표할 뜻을 밝혔다. 준비된 입장문 없이 즉석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20여분 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재판 개입과 자신에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서 방향을 왜곡하고 거래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감정이 북받치는듯 입술을 굳게 다물거나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이른바 판사 뒷조사 문건에 따라 일부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나 재판에서 특정 성향을 나타냈다는 사람이나, 어떤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법원 이미지 [중앙포토]

법원 이미지 [중앙포토]

그는 연이은 자체 진상조사와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선 현 사법부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관여 법관들은 참 기가 찰 일일 것이다. 그 법관들은 아마 ‘(김명수) 대법원장이 왜 그것을 제대로 단호하게 해주지 않는가’하고 상당히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고법원 입법을 놓고 청와대와 교감을 했다거나 대통령 독대 당시에 관련 문건 등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런 것(대통령 독대 말씀자료)은 일회성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무슨 공부 하듯이 (내용을) 외우고 있겠느냐”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자신의 지시로 블랙리스트가 작성, 보고됐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부인하는 취지의 답을 내놨다. “제가 있을 때 법원행정처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이 지적됐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잘못된 것”이라고 했지만 ‘불법’ ‘위법’ 등 표현 대신 ‘부적절한 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 거래 의혹 중 하나로 지목된 KTX 해고 승무원 사건과 관련해 “법관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결론을 낸 것이다. 그걸 견강부회해서 판결이 잘못됐다고 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 수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엔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합니까?”라고 되묻고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고 즉답을 피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같은 날 김명수 대법원장은 전국 법관들에게 ‘전국의 법관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e메일을 보냈다. 김 대법원장은 “조사 결과는 수많은 법관들이 헌신하며 지켜온 자긍심과 국민들이 사법부에 보내주신 신뢰가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며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사찰과 통제의 대상이 됐던 법관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을 비판하고, 혼란에 빠진 법원 내부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사상 초유의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초읽기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이날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위법) 사실이 추가되면 얼마든지 형사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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