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판’ 투자가 불안하다 … KDI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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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경쟁력 저하가 가시화하고 있다. 구조개혁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한국경제 ‘성장 둔화 조짐’ 진단 #KDI, 내년 성장률전망 2.7%로 낮춰 #4월 산업생산, 석달 만에 늘었지만 #반도체 수출 착시가 경제지표 왜곡 #“소득주도 성장, 반도체 편중서 탈피 #더 늦기 전 신산업 발굴 등 나서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 사업 부진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를 내놨다. 정부가 출연한 기관이 구조조정 등 정부 산업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 산업의 부진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KDI는 31일 내놓은 ‘2018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등 일부를 제외하면 수출 증가세가 견실하게 유지되지 못하는 등 산업 간 불균형 성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구조개혁 노력이 지속되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경쟁력 및 활력 저하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4월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19.5%를 차지할 정도로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반도체 시황이 나빠지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대희 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수출 주력 산업의 대외 경쟁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통해 산업 구조조정을 하고 더 나아가 전반적인 경제 구조 개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경기 전망도 밝지 못하다. 올해 3% 성장률 달성도 어렵고 내년에는 성장 속도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게 KDI의 예상이다.

KDI는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9%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전망치와 동일하다. 정부가 목표로 한 3% 성장률을 밑돈다.

KDI는 올해 수출(물량 기준)이 전년 대비 3.8%, 민간소비는 2.8% 늘며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수출은 1년 전보다 1.9%, 민간소비는 2.6% 늘었다.

반면 지난해 8.6%였던 총고정투자(설비+건설+지식재산생산물투자) 증가율은 올해 1.6%에 머물 것으로 KDI는 예상했다. 특히 설비투자(14.6→3.5%), 건설투자(7.6%→-0.2%)는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급감할 전망이다.

정부를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올해 3% 성장에 턱걸이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최근 경기 지표만 보면 낙관하기 어렵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4월 전체 산업생산은 한 달 전보다 1.5% 늘었다. 2월과 3월 뒷걸음질 쳤다가 3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소비와 투자는 부진했다. 소비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소매판매는 4월에 전달보다 1% 줄었다. 지난해 12월 이후 4개월 만에 뒷걸음질이다. 설비투자는 3월에 전달 대비 7.8% 줄어든 데 이어 4월에도 3.3% 감소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확대간부회의에서 “3% 성장 경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일부 지표를 감안할 때 향후 1∼2분기 경제 흐름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경기 회복세가 지속하도록 거시경제 상황과 위험요인을 면밀히 관리하고 미시 경제정책의 조정에도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성장률이 올해보다 주춤할 것이라는 게 KDI의 전망이다. KDI는 내년 성장률을 2.7%로 예상했다. 올해 전망치보다 0.2%포인트 낮다. KDI는 “내년에 수출은 올해와 유사한 증가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하지만 민간소비와 투자가 올해보다 둔화되며 성장률이 소폭 하락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 경제 정책의 방향 전환을 주문한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펼치면서 성장을 도외시한 결과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양극화만 심화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만 매달린 결과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분배 지표도 나빠졌다”며 “주력 산업 경쟁력 강화, 신산업 발굴과 같은 성장 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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