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얀마 철권정치 어떻게 해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국이 유혈시위로 무정부상태에 빠져든 미얀마에 남겨진 선택은 이제「세인·르윈」의 퇴진으로 정국을 수습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첫째로 현정부가 버팀목인 군부의 충성을 믿고 유혈탄압으로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일, 둘째는 또 다른 쿠데타로 새로운 군사정부가 들어서는 일, 셋째는 「르윈」이 하야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해 민주화와 정치 및 경제개혁을 실시하는 일이다.
그 동안 미얀마국민은「청빈한 가운데 안분지족하는 은둔 국민」으로 알러져 왔으며「네윈」 전 대통령의 20여년 철권통치아래서도 대규모 국민시위는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가뭄으로 인한 흉작과 전통화량의 80%를 폐기하는 경제실책으로 국민들의 쌓였던 분노는 충천하기 시작했다.
「네윈」은 지난해 8월 이례적으로 국영방송매체를 통해 「국가의 결점」을 인정하면서 부분적으로 집권 25년만에 상거래에 대한 규제완화를 실시하는 회유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회유와 채찍」의 양면정책을 번갈아 써 온 「네윈」정부의 채찍 정책은 동남아 후진 독재국에서 취해 온 것 이상으로 살벌했다.
수천 명의 대학생이 랑군 등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인 지난 3월 「르윈」 현 대통령은 탄압에 앞장서 43명을 살해하는 피의 금요일을 연출했는데 서방외교관들은 이때 1백여명의 학생이 사살된 것으로 전했다. 또한 시위진압군들이 학생들을 호송하는 트럭에 최루탄을 쏘아 41명이 질식해 사망하기도 했다.
이때 1천5백∼2천 여명의 학생이 구속됐으며 이들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6월 시위에도 1백 2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러졌다.
전국 학교휴교령과 계엄령이 발효됐던 이기간 중 진압군들은 무자비한 고문을 해 여러 명의 여학생들이 추행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중 한 여학생은 임신까지 한 것으로 보도됐다.
지난 26년간 「네윈」의 추종자로 시위탄압의 「도살자」란 악명을 떨친 「르윈」은 1970년대 중반 지도층 반정부세력을 모두 축출했으며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할수 없이 해외로 망명, 버마는 현재 고급인력난에 시달리는 현상을 빚고 있다. 「르윈」은 지난해 7월, 시위진압만을 전문으로 하는 친위대로 제22경보병 사단을 특별히 편성해 철저한 탄압정책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배고픔에 진저리가 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미얀마 정부는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구속학생 일부를 석방하는 궁여지책을 쓰기도 했다.
이제 국민들은 군 장교들 마저 70여%가 싫어하는 「르윈」의 축출에 목숨을 내놓고 항쟁하고 있다.

<고혜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