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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뽑아야 우리도 득 봐”“드루킹 보니 김태호가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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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가 지난 22일 사천시 삼천포용궁수산시장에서 여성 유권자와 사진을 찍고 있다. [송승환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가 지난 22일 사천시 삼천포용궁수산시장에서 여성 유권자와 사진을 찍고 있다. [송승환 기자]

‘드루킹 특검법안’이 지난 21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다음달 13일 경남지사 선거에 전국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사에 당선될지 여부가 하반기 정국의 주요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김경수 후보는 현직 의원 배지까지 던지며 사실상 지사 선거에 정치 생명을 걸었고, 그에 맞서는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도 경남을 방어해 보수진영의 리더로 재기하길 꿈꾼다. 드루킹 사건이 전개될수록 민심의 진폭도 커져 선거 결과를 쉽게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방선거 풍향계 경남지사 #주민 한 달 전보다 드루킹 언급 늘어 #“적폐청산 외친 여당이…” “정치공세” #김경수 “요새 여러 군데 두들겨 맞아 #노무현 공격하던 분들이 지금도 …” #김태호 “미워도 기회 한번 더 주이소 #경남 지켜야 대한민국 균형 맞아”

부처님오신날인 22일 경남 양산의 통도사 진입로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들에게 지사 선거를 물어보니 금세 논쟁이 붙었다. 오인근(56)씨는 “김경수는 아직 어려서 경륜이 필요하다”며 “김태호는 군수·도지사·국회의원 다 해보고 MB정부 때 총리 후보에서 낙마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보수의 차기 대권 주자였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고동찬(52)씨도 “잡혀가야 할 사람이 민주당 후보로 나온 건 경남도민을 우습게 본 것”이라며 “적폐청산 하자고 했으니까 똑같이 까발려 보자”고 말했다. 반면 이중우(60)씨는 “김경수가 드루킹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해도 문제될 행동은 없었을 것”이라며 “특검이 수사해도 문제가 없다는 게 드러날 것”이라며 반박했다. 지나가던 심선숙(47)씨도 “드루킹 사건은 오히려 김경수가 피해자 아니냐. 열성 지지자들의 댓글 활동을 여론 조작으로 몰고가는 정치 공세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중앙일보가 경남을 찾았을 때만 해도 드루킹 사건은 골목 민심까지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지사 선거를 물어보면 대다수가 드루킹 사건부터 거론했다. 사건의 세부 내용도 제법 알려진 듯했다. 아이들과 통도사를 찾은 문경진(42)씨는 “드루킹 사건이 처음에는 복잡해 잘 모르겠던데 청와대 비서관이 등장하고 돈을 받았다고 하니까 선명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김경수 후보는 경남 합천군의 해인사를 방문한 뒤 경남 사천의 삼천포 용궁수산시장을 찾았다. 사천은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지만 여론조사에서 굳건한 지지율을 보이는 김경수 후보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상인들은 마치 연예인을 본 듯 회를 썰다가 장갑을 벗어 악수를 청했고 수첩을 들고 나와 김경수 후보의 사인을 받아갔다. 횟집 주인 박심자(58)씨는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힘이 세고 인기가 좋다 아닙니까”라며 “김경수를 뽑아야 우리도 득을 볼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수 후보는 드루킹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반박을 하기보다 정책 대결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이다. 캠프 관계자는 “제조업 혁신으로 일자리 창출, 경제 위기 극복, 서부 경남 KTX 착공 등 공약이 경남도민에게 가장 높은 선호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경수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9주기 추도식이 열리는 23일엔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봉하마을에서 추모객을 맞이했다.

김경수 후보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저도 요새 들어 여러 군데 두들겨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공격했던 그분들은 새로운 시간을 싫어했고 지금도 그렇다”며 “우리는 9년 전 우리가 아니다. 그들은 훼방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는 양산시 통도사에서 도민을 만났다. [송승환 기자]

같은 날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는 양산시 통도사에서 도민을 만났다. [송승환 기자]

김태호 후보는 드루킹 총공세를 펴며 추격전에 나섰다. 그는 요즘 가는 곳곳마다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김경수 후보가 사과는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김경수 후보는 구체적 반박도 없이 의혹이 소설이라고 하는데 김 후보의 반박이야 말로 더 소설 같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김태호 후보는 통도사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미워도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이소”라며 “경남을 지켜야 대한민국의 균형이 맞다 아입니까”라고 호소했다. 한국당의 색깔은 최대한 감추고 개인기인 친화력을 앞세우는 전략이다.

지역마다 정치성향의 차이도 나타났다. 창원 상남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진룡(77)씨는 “드루킹 사건은 시끄럽기만 하지 아직 밝혀진 게 없다”며 “이번에는 경남에서 민주당이 당선돼 한국당에 정신 차리라는 경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수 후보의 지역구였던 김해 장유의 영화관에서 만난 윤여림(35)씨는 “김경수가 도지사가 돼야 경남도 바뀌었다는 소리 듣지 않겠습니까”라며 “다만 드루킹은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민주당과 청와대가 남북대화 분위기로 덮으려 하지 말고 다 공개해 과거와 다른 정부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부 경남인 진주에서 만난 주민들에겐 “우리는 민주당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진주 농산물도매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지적하며 집권당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과일가게를 하는 하진억(60)씨는 “매일 TV에 문재인 대통령이 잘한다고 나오는데 정작 시장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도 안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양파 껍질을 벗기던 김숙동(57)씨는 “식당들이 문을 닫고 최저임금이 올라 사람도 못 쓰고 있는데 위에선 남북 문제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중앙시장에서 한복을 파는 박다향(44)씨는 “한국당은 이미지가 워낙 나쁘니까 바른미래당을 찍겠다”고 말했다.

굵직한 외교안보 이슈에 가려 흥행에 실패한 지방선거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도 자주 나왔다. 진주의 영화관에서 만난 최경아(28)씨는 “건물 벽에 현수막을 크게 붙여 놓아서 선거철이라는 건 알았지만 우리 지역에 누가 나오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식사하던 중년 남성 두 명에게 선거에 대해 묻자 “밥맛 떨어지게 정치 얘기 꺼내냐”며 짜증을 냈다.

경남 양산·창원·진주·김해=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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