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주부가 239억 사기···사촌동생도 몰랐던 돌려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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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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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생도 속았다. 남편과 어머니는 본인들도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범행 기간은 5년, 피해액은 239억원에 달하는 사기 행각이 평범한 30대 가정 주부의 손에서 벌어졌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23일 2013년부터 올해까지 "여행 상품권을 78만원에 구매하면 92만원에 환매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며 가족과 주변 지인에게 상품권 환매 사기 행각을 벌인 피의자 손모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사건추적] #5년간 "상품권 환매하면 돈벌 수 있다"며 사기행각 #사촌동생도 속여...남편,엄마는 "우리도 피해자" #피해자들 "남편, 엄마가 몰랐을 리 없다" 강한 반발 #

양천 경찰서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남편과 어머니를 제외하고도 12명"이라며 "추가 피해자가 나올 경우 피해액 규모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대 피해자는 피의자의 친구로 67억원을 투자했다. 남편과 어머니도 같은 수법으로 17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어떻게 남편과 엄마가 사기 행각을 몰랐겠나, 그들도 피해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범 여부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말했다.

실제 21일까지 경찰에서 추산한 피해액은 176억원이었다. 하지만 이틀 만에 피해자 두 명이 더 늘어났고 피해액도 63억원이 불어났다. 추가 피해자 여부에 따라 사기 규모가 300억원을 넘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한 총 사기 액수는 239억원이며 돌려막기를 하지 못한 미지급액은 14억원 정도"라며 "모두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넉넉지 못한 사람들이 좋은 투자 기회라 생각해 돈을 쏟아부은 것"이라며 "다들 정말 억울해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경찰은 아직 손씨에게서 특별한 범행 동기를 파악하진 못한 상태다. 다만 1인 범행임에도 피해액 규모가 커서 해당 금액이 투기성 사업이나 도박 등에 사용되지는 않았는지 추가 불법 행위를 살펴보고 있다.

손씨는 입금된 금액으로 투자자들에게 돌려막기를 하며 남은 돈을 생활비와 카드비에 충당했다고 진술했다. 명품 등을 구매한 전력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고 했다.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보여준 조작된 통장잔고 화면. 8억여원이 남아있다고 표시돼있다. [양천경찰서 제공]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보여준 조작된 통장잔고 화면. 8억여원이 남아있다고 표시돼있다. [양천경찰서 제공]

전과 없는 초범이지만 손씨는 5년간 사기 행각을 펼치며 치밀함을 보였다. 불안해하는 피해자에게 조작된 통장 잔고를 보여줬고 여행사에 다니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서로 카톡을 주고받는 것처럼 조작한 화면을 보냈다.

돌려막기를 통해 원금을 꾸준히 갚아나가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혔고 지난주 사기를 의심하는 피해자 5명이 고소해 긴급체포됐다. 경찰 관계자는 "손씨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체포에 응했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손씨의 사기 행각에 오랜 기간 속았던 이유로는 실제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손씨가 제안한 짭짤한 상품권 환매 수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3일 기준으로 실제 상품권 판매사이트에서 여행 상품권을 환매할 경우 5.5%의 수수료를 제한 현금을 받을 수 있다. 100만원 짜리 상품권을 판매하면 94만5000원을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판매사이트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상품권을 회사에 등기로 보내시거나 찾아와 보여주시면 수수료를 떼고 현금을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손씨는 "여행사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구매할 경우 20%에 가까운 수익을 벌 수 있다"고 제안했다. 피해자들에겐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 모두 똑같은 수법으로 당했다. 주로 가족과 지인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 이외에도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손씨의 금융계좌 내역을 분석하고 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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