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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혐오가 '캣맘'혐오로...위협 빈번해 호신용품 들고 여럿이 다녀

중앙일보

입력

"고양이들에게 밥 주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유리병이 날아왔어요."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캣맘'(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이) 이은희(23)씨는 1년 전쯤, 인근 한 공원에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다 사고를 당할 뻔했다. 지나가던 차에서 누군가 그를 향해 유리병을 던진 것이다. 이씨는 "인근 주민들이 '벽돌을 한 번 맞아봐야 그 짓을 그만할 거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며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어 호루라기를 지니고 다닌다"고 말했다.

길고양이에 대한 혐오가 이들을 보살피는 '캣맘'에 대한 공격과 혐오로 번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호신용품을 들고 다니는 캣맘들이 늘고 있다. 캣맘 A씨는 "길고양이 밥그릇에 고춧가루나 인분을 넣어 고양이를 학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캣맘에게 욕을 하거나 폭행을 가하는 일 역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길고양이 밥그릇에 누군가 고춧가루를 넣었다. [사진 김하연씨]

길고양이 밥그릇에 누군가 고춧가루를 넣었다. [사진 김하연씨]

지난해 12월 말,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캣맘 안모씨도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다 봉변을 당했다. 40대 남성 B씨는 "당신 때문에 고양이들이 몰려온다"며 안씨의 몸을 잡아끌었다. B씨는 같은 동네에 거주하던 주민으로, 평소에도 안씨를 상습적으로 위협했다. 현재 B씨는 폭행죄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된 상태다. 안씨는 "전에는 호루라기를 들고 다녔는데 이제는 다른 호신용품도 구매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경북 구미시에서 활동하는 캣맘 신모(27)씨는 "밥그릇을 엎거나 고양이를 발로 차는 모습을 봤다"며 "인근 주민과 시비가 붙은 적도 많아 밥 주러 나갈 때는 가족과 함께 가거나 호신용품 '쿠보탄'을 들고 나간다"고 말했다.

캣맘 신모씨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갈 때 항상 호신용품 쿠보탄을 가지고 간다. [사진 신모씨]

캣맘 신모씨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갈 때 항상 호신용품 쿠보탄을 가지고 간다. [사진 신모씨]

캣맘들은 위험을 대비해 호신용품을 소지할 뿐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다니기도 한다. 경기 안산시에 거주하는 캣맘 김아경(50)씨는 "캣맘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룹으로 모여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 이화여대의 길고양이 보호 동아리 '이화냥이' 측은 "고양이에게 밥을 줄 때 항상 2인 1조로 다니고, 호신용 경보기를 항상 챙긴다"고 밝혔따. 길고양이 전문사진작가 김하연(48)씨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캣맘도 사람이 아닌 고양이 대하듯 한다"며 "사회적 약자인 동물, 여성들에게 혐오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캣맘 때문에 길고양이 수가 늘어나 동네가 지저분해진다고 생각하는 일부 주민들의 반감이 캣맘에 대한 위협과 공격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조동기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양이와 캣맘에 대한 혐오의 뿌리는 동일하다"며 "과잉 경쟁사회에서 증폭되는 좌절감이나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표출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인식 개선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지정된 자리에서 주기적으로 사료를 공급해야 길고양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동네 위생을 악화시키는 일을 막을 수 있다"며 "캣맘들의 구조활동을 통해 TNR(Trap Neuter Return·중성화 수술 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할 수 있어 오히려 개체 수 조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고양이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자체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길고양이가 캣맘이 준 사료를 앞에 두고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 이은희씨]

길고양이가 캣맘이 준 사료를 앞에 두고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 이은희씨]

전진경 동물보호단체 카라 상임이사는 "캣맘들이 아무리 5인 1조로 다닌다고 해도 급작스러운 위험 상황에는 대처하기 어렵다"며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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