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허그, 콘서트…스승의 날을 학생의 날로 바꾼 교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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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인 15일 아침, 동대문구 정화여상 1학년 한수진(가명·16)양은 학교 정문에 들어서다 깜짝 놀라 멈춰섰다. 교문 앞에 커다른 푸드트럭 두 대가 멈춰서 있고 한 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라면과 햄버거를, 다른 한 쪽에서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내놓고 있었다. 푸드트럭 옆에는 죽 늘어서 있던 교사 10여명은 머뭇대는 한양을 발견하자 "어서 오라"며 반겼다. 여자 선생님들은 한양을 꼭 안아주며 “배고플 텐데 뭐 좀 먹고 들어가라”며 등을 토닥이고, 남자 선생님들은 한양과 손바닥을 부딪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과 포옹을 하고 있다. 정화여상은 이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아침을 거른 학생들에게 아침식사를 나눠주고 끌어 안아주며 스승의 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뉴스1]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과 포옹을 하고 있다. 정화여상은 이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아침을 거른 학생들에게 아침식사를 나눠주고 끌어 안아주며 스승의 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뉴스1]

이날 정화여상 학생 300여명은 교문에서 간식을 건네받고 교사들과 프리허그와 하이파이브를 함께 하며 특별한 인사를 나눴다. 한양은 “중간고사를 못 봐서 며칠 전 담임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고 좀 서먹했었다”면서 “오늘 아침 담임선생님이 먼저 다가와 햄버거를 건네시며 안아주시는 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이 스승의 날인데, 선생님들께 학생인 내가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된 뒤 두번째 스승의 날 맞아, 학교 현장에선 스승의 날 행사를 둘러싸고 고심이 많다. 행사나 선물 문제로 학생·학부모와 교사 간에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는 이유로 아예 재량 휴업을 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스승의 날을 학생에게 친밀감과 애정을 표현하는 날로 바꾸는 교사들이 있다.

정화여상의 프리허그·하이파이브 행사는 이 학교 이남기 교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이 교사는 “실업계 학교의 특성상, 학생들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에 진출해 홀로서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볼 때마다 늘상 안타깝고 안쓰러웠다”면서 “아이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학생을 위한 스승의 날’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여러 선생님이 동참해 이 같은 행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의 제안에 아침식사를 거르는 아이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챙겨주자는 아이디어가 보태졌고, 학생들이 평소 좋아하는 메뉴인 라면·햄버거·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로 했다. 교사들은 스승의 날 일주일 전부터 메뉴를 정하고 푸드트럭을 빌리는 등 동분서주했다. 백구성 교사는 “교문 앞에서 아이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굉장히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면서 “작은 이벤트지만 이를 통해 아이들이 교사를 좀더 편안하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과 하이파이브를하고 있다. 뉴스1]

서울 동대문구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과 하이파이브를하고 있다. 뉴스1]

정화여상처럼 학교 전체가 학생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한 곳도 있지만, 교사나 학급 단위로 학생에게 선물을 마련해 스승의 날을 기념한 곳도 많았다. 서울 중랑구 동원초 김혜진 교사는 이날 아침 일찍 출근해 반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교실 곳곳에 직접 만든 책갈피를 숨겨뒀다. 책갈피는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어’ ‘나는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처럼 학생들에게 힘이 될만한 글귀를 적고 코팅해 김 교사가 손수 만든 것이다.
김 교사는 등교한 학생들에게 “오늘은 ‘마음의 보물찾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책갈피를 찾은 학생은 교실 앞에서 큰 소리로 책갈피에 적힌 문장을 읽도록 했다. 김 교사는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작지만 의미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며칠동안 고민했다”면서 “책갈피는 소박한 물건이지만, 아이들이 스승의 날 선생님에게 받은 선물이라면서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서울 동원초 김혜진 교사가 스승의 날을 맞아 자신의 반 학생들에게 선물로 마련한 책갈피. 김 교사가 아이들에게 힘이 될만한 문장을 적고 코팅해 직접 만들었다. [김혜진 교사 제공]

서울 동원초 김혜진 교사가 스승의 날을 맞아 자신의 반 학생들에게 선물로 마련한 책갈피. 김 교사가 아이들에게 힘이 될만한 문장을 적고 코팅해 직접 만들었다. [김혜진 교사 제공]

서울 동원초 김혜진 교사는 스승의날인 15일 아침 직접 만든 책갈피를 교실 곳곳에 숨겨놓고 학생들에게 보물찾기를 하게 했다. 보물찾기에 성공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김 교사는 "스승의 날 아이들에게 작지만 의미있는 선물을 주고 싶어 책갈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혜진 교사 제공]

서울 동원초 김혜진 교사는 스승의날인 15일 아침 직접 만든 책갈피를 교실 곳곳에 숨겨놓고 학생들에게 보물찾기를 하게 했다. 보물찾기에 성공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김 교사는 "스승의 날 아이들에게 작지만 의미있는 선물을 주고 싶어 책갈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혜진 교사 제공]

교사가 학생을 위해 노래를 만들고 스승의 날 공연을 준비한 학교도 있다. 인천 하늘고의 김경훈 교사는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고3 제자들을 위해 ‘너에게 달린다’는 곡을 만들었다. 김 교사는 “고3 담임을 맡다보니, 학업 스트레스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더라”면서 “학창시절은 성적 관리가 전부가 아니라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밝고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아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이 노래를 스승의 날인 15일 오후 4시에 학교 강당에서 깜짝 콘서트 형태로 학생들 앞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스승의 날은 교사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하나가 되어야 의미있는 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교사가 먼저 학생을 격려하고, 학생이 교사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공감해주는 것이 최고의 스승의 날 행사”라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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