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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줄이랬더니 첨부파일 40개 … 국내 기업 문화 여전히 무늬만 혁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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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근 대기업 A사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 정착을 위해 오후 6시 이후 사무실 전등을 강제로 끄도록 했다. 또 부서장에게 올리는 보고서도 A4 용지 1장으로 줄였다. 이런 지침은 제대로 정착됐을까. 이 회사 소속 B차장은 “현실은 불 꺼진 사무실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일하고 1장짜리 보고서에 40장의 첨부 자료를 붙이고 있다”며 “‘무늬만 혁신’일 뿐 나아진 게 없다”고 토로했다.

대한상의·맥킨지 2000명 설문 #직장인들 회의·야근에 특히 불만

대한상공회의소와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조사한 ‘기업문화 진단 결과’에 나온 실제 사례다. 대한상의는 최근 국내 대기업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야근·회의·회식·보고·업무 지시·여성 근로 등 주요 항목별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2016년 1차 조사보다는 전반적으로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항목별 점수들은 대부분 70점(100점 만점)을 넘지 못했다.

전반적인 기업 문화 개선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직장인 87.8%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근본적으로 개선이 됐다’는 응답은 12.2%에 그쳤다. 항목별로는 ‘야근’이 2016년 31점에서 46점으로, ‘회의’가 39점에서 47점으로 올랐지만 둘 다 50점을 밑돌았다. 77점에서 85점으로 오른 ‘회식’을 제외하면 모두 50~60점대에 그쳤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직급을 ‘님’으로 통일했지만 정작 소통은 잘되지 않고 복장을 자율화했더니 ‘청바지 입은 꼰대’만 늘었다는 웃지 못할 반응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중·소 기업 총 8개사를 무작위로 뽑아 분석한 ‘조직 건강도 심층진단 결과’도 대부분(7곳)이 ‘중·하위 수준’ 이하에 머물렀다. 국내 기업들은 책임 소재 파악, 조직원 동기 부여 항목에선 글로벌 기업보다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리더십, 업무 조율과 통제 시스템, 업무 방향성 등 대다수 항목은 뒤처졌다.

박재근 대한상의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경영 환경 변화에 대처하려면 빠른 업무 실행, 자율적인 인재 육성, 코치형 리더십 등 역동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양손잡이형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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