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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벼락 갑질'에서 시작된 대한항공 오너일가 전방위 수사,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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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전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조현민 전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조현민(35) 전 대한항공 전무가 일으킨 파장이 대한항공 전체를 집어삼킨 난기류가 됐다. 조 전 전무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이 대한항공 총수 일가 전원에 대한 불법과 비리고발로 번지면서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익명 폭로가 나오기 쉬워졌고, 과거와 달리 무조건적인 상명하복 문화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는 사회 분위기가 맞물려 '대한항공 총수 일가 퇴진'으로까지 확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전 전무의 갑질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지난달 12일이다. 지난 3월 16일 조 전 전무가 A 광고대행사 직원과 회의 중 질문을 했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이 돌아오자 물을 뿌리고 음료가 든 병을 던졌다는 내용이다. 처음으로 사건이 보도된 날 조 전 전무가 휴가차 출국했다는 사실도 알려져 논란이 커졌다. 서울 강서경찰서의 내사(4월 13일)는 조 전 전무의 욕설이 담긴 음성파일(4월 14일)이 공개된 뒤 정식수사 및 출국금지 신청(4월 16일)으로 이어졌다.

조 전 전무의 업무방해와 폭행 혐의가 논란을 키워가는 동안 대한항공 직원들은 카카오톡에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 단체 채팅방 만들어 결집하기 시작했다. 조 전 전무의 모친인 이명희(69) 일우재단 이사장이 호텔 공사현장에서 사람을 밀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채팅방에서 나온 것이다.

갑질뿐만이 아니다. 다른 쪽에서는 총수 일가가 밀반입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조현아 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대한항공 항공편을 이용해 개인 물품을 국내로 밀반입했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관세청은 지난달 21일부터 대한항공 본사와 총수 일가의 평창동 자택 등에 대한 수차례 압수수색을 벌였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지방국세청이 검찰에 조 회장을 상속세 탈루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이밖에 조 회장 일가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지난 10일 진에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벼락 갑질이 일으킨 논란이 대한항공 총수 일가에 대한 전방위적인 불법·비리수사로까지 번진 셈이다.

'물벼락 갑질' 논란 후 대한항공 갑질·불법 의혹 일지

'물벼락 갑질' 논란 후 대한항공 갑질·불법 의혹 일지

대한항공 직원과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대한항공 직원과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갑질과 인권침해의 묵인 속에 조직이 움직이던 과거와 달리 개인의 행복권이 앞선 오늘날 대한항공 직원들의 강력한 반발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압축적인 성장을 이룬 이후 조직을 구성하는 직원들의 심리는 변화했지만 총수 일가 1세대의 낡은 경영방식은 그대로 2~3세대 경영진에 이어져 온 것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터져 나온 결과로 풀이했다. 민 의원은 "정의로운 사회와 기회평등, 공평을 갈구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갑질을 허용할 수 없는 마인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그동안 우리 사회의 재벌 위주 경제생태계 속에서 총수 일가의 반성 없는 행태가 강한 반작용으로 돌아온 것 같다. 작은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에 대한 수사기관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는 현 정부의 적폐청산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조현아의 '땅콩 회항' 때와 달리 지금과 같은 수사가 전개되는 것은 어느 정도 현 정부의 적폐청산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간섭으로 비춰지면 곤란하고 기업 조직은 보호하는 측면에서 수사기관의 접근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대한항공의 총수 일가와 관련해 "선단경영·황제경영·세습경영이 재벌의 본질 3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가진 장점이 있으나 지금은 단점만 극명하게 부각되는 시점"이라며 "총수 일가가 경영진으로서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렸다면 이제는 주주로서 사퇴를 포함한 '내려놓기'가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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