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빈삼각의 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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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결승 1국> ●탕웨이싱 9단 ○구쯔하오 9단   

7보(79~92)=인생이 그렇듯, 바둑 격언 중에는 모순적인 것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게 '빈삼각'과 관련된 것이다. 빈삼각은 바둑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금기시되는 나쁜 모양 중 하나다. 돌이 뭉쳐 있어서 움직임이 둔하고, 돌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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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바둑의 기본 행마법에 관한 격언 중에는 '빈삼각은 두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바둑 격언에는 '빈삼각을 둘 줄 알아야 고수가 된다'는 말도 있다. 도대체 빈삼각을 두라는 건지, 두지 말라는 건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빈삼각을 두지 말라는 건 바둑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초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원리 원칙에만 얽매여 있으면 안 된다. 주변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과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고수가 되기 위해선 상황에 따라 나쁜 모양인 빈삼각을 거리낌 없이 둘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참고도

참고도

실전의 82는 빈삼각인 동시에 흑의 허점을 찌르는 날카로운 묘수. 덕분에 흑은 꽤 답답한 처지가 됐다. 앞으로 '참고도' 정도의 진행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는데, 구쯔하오가 별안간 84로 방향을 틀었다.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긴 걸까. 이렇게 되고 나니, 묘수인 듯 보였던 82가 굳이 둘 필요가 없었던 악수가 됐다. 이렇듯 바둑에서는 고정불변의 가치란 없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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