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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둔화 땐 최저임금 인상 일단 멈춘다" … 갈등 줄이는 캘리포니아의 비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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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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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리치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은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 속도 조절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마이클 리치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은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 속도 조절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에 양날의 칼이다.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이 늘어날 것처럼 보이지만 되려 고용이 줄어 총소득은 감소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 효과에 관한 연구는 종종 논쟁적인 결론을 도출하며, 곳곳에서 반박과 재반박이 진행 중이다.

마이클 리치 UC버클리 교수 #‘양날의 칼’ 최저임금 인상 갈등 #인건비 부담, 인과관계 따져보길 #임금 뛰면 생산성도 올라야 선순환 #최저임금 1만원, 중위소득의 70%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

제이컵 비그도르 워싱턴대 교수 연구팀은 시애틀시의 최저임금 인상 후 고용과 소득 변화를 연구한 논문 2건에서 "시애틀 최저임금이 9.47달러에서 11달러(인상율 16%)로 올랐을 때는 일자리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지만, 11달러에서 13달러(인상율 18%)로 올랐을 때는 임금은 3% 올랐지만, 근로시간은 9%, 일자리 수는 6.8% 줄었다”고 발표했다.

반면 마이클 리치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팀은 최저임금이 8.55달러에서 13달러로 인상된 기간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최저임금이 10% 오를 때마다 임금은 1% 올라 근로자의 소득은 약간 늘었고, 일자리 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최근 UC버클리 연구실에서 만난 리치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은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치 교수는 최저임금 연구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주 정부 재정적자 예상 땐 인상 1년 유예

한국에서는 1년 새 최저임금이 16.4% 오르면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지 따져봐야 한다. 물가 상승이나 고용 감소는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어도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패스트푸드점의 자동화 기기 설치는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해선 안 된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에 각종 비용 증가까지 더해 총체적으로 보일 텐데.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만을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음식점을 예로 들면 운영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이 16% 인상되더라도 모든 직원이 해당하는 건 아니다. 총 인건비 인상률을 3분의 1 수준인 5%라고 치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가격 인상 요인은 1~2%에 불과하다. 자영업자가 느끼는 공포는 이해하지만, 인건비를 감당 못 해 직원을 내보낸다는 게 사실인지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캘리포니아주는 경기가 나빠지면 최저임금 인상 일정을 잠정 중단하는 ‘일시 멈춤(pause) 버튼’을 명시했다. 경기 악화의 기준을 아예 법률로 정해 해당 조건이 나타나면 자동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미뤄진다. 해석의 차이로 인한 사회갈등 요인을 줄일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올해(11달러)부터 2022년까지 해마다 최저임금을 1달러씩 올리는 일정을 정했다. 하지만 주지사는 매년 8월 1일을 기준으로 직전 3개월 또는 6개월간 일자리가 줄고 12개월간 소매 판매가 감소하는 경우, 주 정부 재정에 적자가 예상되거나 장래 2개 회계연도에 적자가 예상되는 경우 최저임금 인상을 1년간 유예할 수 있다. 6년간 이 ‘버튼’을 두 차례 사용할 수 있다.

한국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큰 폭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할 때는 점진적인 이행 속도가 중요하다. 뉴저지주는 현재 8.2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증가폭은 크지만 단번에 하겠다는 게 아니라 5~6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 몇 해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중위소득의 70% 수준이 된다는 전망이 있는데.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호주를 비롯해 한두 개 나라가 60%를 넘고 프랑스는 55%쯤 된다. 캘리포니아주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면 60% 수준이 된다. 이 정도까지는 감내할 수 있다. 70%는 나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제조업 기반이 넓고 수출 중심 경제이기 때문에 이 정도 임금 수준이 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는.
“시간당 13~14달러 수준에서는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 저임금 노동자가 받는 혜택이 사회적 비용을 웃돌기 때문이다. 부자보다 저소득자가 늘어난 소득을 더 소비하는 경향이 있어 총수요가 증가한다. 고용 이외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최신 논문 중에 부모의 아동 학대와 방치가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다. 재범률을 줄인다는 논문도 나왔다. 공공보건에도 긍정적이다. 이런 것까지 비용편익분석에 넣으면 경제 효과는 더 커진다. 포용적 성장이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미국선 세금 깎아 소비 확대로 일자리 창출

미국 여러 도시에서 최저임금이 오르는데도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다.
“경기 상승기에 최저임금 인상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려해야 할 것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가 최고조로 확장된 상태에서 임금이 빠른 속도로 오르다가 불황이 시작된 뒤에도 계속 오르면서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임금이 오르는 만큼 생산성이 올라야 기업이 이윤을 얻는 선순환이 된다.”
왜 최저임금 인상이 세계적 트렌드가 됐나.
“너무 오랫동안 임금 인상이 저조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엔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이 최저임금 대상이었으나 이젠 일한 지 10~15년이 넘는, 부양가족이 있는 성인이 더 많다.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2009년 이후 오르지 않았다. 보수 성향을 띠는 주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찬성 여론이 60~80%씩 나온다.”
한국의 높은 청년 실업률, 대책이 있을까.
“미국도 수치는 비슷하지만, 양상은 다르다. 미국 청년 실업률은 학업을 마치지 않은 교육 중도 포기자들이 주류다. 거꾸로 한국은 학위가 있는데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의 총수요를 증가시켜야 고학력 청년을 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대적인 세금 감면을 통해 소비를 늘림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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