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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이 내일의 자본주의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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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31면

책 속으로

메뚜기와 꿀벌

메뚜기와 꿀벌

메뚜기와 꿀벌
제프 멀건 지음
김승진 옮김, 세종서적

메뚜기(약탈)와 꿀벌(생산) 경쟁 #정부·자본·노동의 균형 찾아야 #선거·의회정치도 19세기 발명품 #정책결정에 전문가 참여 늘려야

좋다 나쁘다. 좋다 싫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양분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는 좋고 독재는 나쁘다. 자본주의는 좋고 사회주의는 싫다는 식이다. 독재에도 자본주의에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다고 인식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종합적으로 평가하려면 골치 아픈 게 아닐까. 사물이나 사상, 체제의 양면성을 외면하는 게 마음 편할 수도 있다.

『메뚜기와 꿀벌: 약탈과 창조, 자본주의의 두 얼굴』은 좋은 자본주의와 나쁜 자본주의를 분리해 다룬 책이다. 무조건 좋은 자본주의 요소는 없다는 입장에서 좋은 기업가 정신과 나쁜 기업가 정신, 좋은 혁신과 나쁜 혁신, 좋은 이윤과 나쁜 이윤을 제대로 구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목에 나오는 메뚜기는 자본주의의 악당이다. 꿀벌은 자본주의의 영웅이다. 메뚜기는 약탈자, 착취자다. 생산적인 활동은 안 하고 예컨대 ‘돈으로 돈 버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메뚜기는 ‘약탈적 금융’이다. 아프리카의 무장 세력 지도자나 북한의 관료들도 메뚜기다. 꿀벌은 혁신가, 봉사자,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가 문제다. 저자의 해법은 간단하다. 메뚜기의 힘을 제한하고 꿀벌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내재한 창조적인 힘을 극대화하고 자본주의가 배태한 자신을 파괴하는 힘을 극소화하자는 뜻이다. 저자는 메뚜기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면 경제위기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젊었을 때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지금은 사회민주주의 진영에 속한다. 저자에게 자본주의는 “교환 가능한 가치의 끊임 없는 추구”다. 그는 지금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일단 자본주의가 역사의 끝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되어갈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지만, 현 상태로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예측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뭔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떻게 뭘 해야 할까.

꿀벌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상징한다.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 쓴 『꿀벌의 우화』(1714)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앞서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을 제시했다. [사진 미국 텍사스주 기록보관소]

꿀벌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상징한다.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 쓴 『꿀벌의 우화』(1714)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앞서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을 제시했다. [사진 미국 텍사스주 기록보관소]

저자는 역사와 국가의 역할에서 답을 찾는다. 1929년 시작한 대공황 상황에서 국가가 손을 놓고 있었다면 자본주의는 망했을 것이다. 국가가 개입해 복지국가를 노동자들에게 선사했다. 정부와 자본과 노동은 타협했다. 저자는 "국가가 투자자로서, 생산자로서, 규제자로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생겨날 수도, 지탱될 수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온 세계가 주목하는 실리콘밸리마저도 연구·개발 투자의 40%가 정부 자금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새로운’ 버전의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기초한 경제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추동하는 ‘돈 욕심’ 못지않게 우정이나 사랑 같은 인간관계가 중요하게 된다. 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보면 선진국 경제의 중심에서 의료·교육·녹색 산업의 비중의 커지고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이끌 3대 산업 부문이다.

그는 균형을 중시한다. 상품과 인간관계, 자본가와 노동자, 약탈과 창조 사이의 균형을 복원하는 게 새로운 자본주의의 전제 조건이라고 본다. 그런데 균형은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국가와 시민사회가 뭔가를 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이것저것 모색해야 한다. 길이 보이면 국가와 사회는 래디컬(radical)하게 그 길을 가야 한다.

저자인 제프 멀건은 영국 국가과학기술예술기금(NESTA) 대표다. 영국 노동당의 ‘혁신 브레인’인 그는 혁신을 아주 간단하게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아이디어(new ideas that work)’로 정의한다. 그에게 혁신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각종 국가 혁신 순위를 보면 상층부를 차지하는 것은 대체로 핀란드·스웨덴·스위스·캐나다 등 사회민주주의가 강한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는 사회적으로는 진보적, 경제적으로는 개방적이다. 독재적이거나 폐쇄적이거나 불평등한 나라들은 혁신이 굉장히 힘들다고 본다.”

『메뚜기와 꿀벌』에서 제프 멀건은 한국을 수차례 긍정적으로 인용한다. 평등이 성장을 더 잘 설명한다는 근거로 1940~50년대 토지개혁으로 부와 토지에 대해 급진적인 재분배 정책을 편 한국 사례를 든다. 그는 한국을 이스라엘·중국·독일 등과 더불어 미래를 위한 투자를 크게 높이고 있는 나라로 꼽았다.

멀건은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또한 혁신의 타깃으로 삼는다. 첫째, 민주주의 혁신의 성공은 집단지성의 동원에 달렸다. 그는 "민주적이건 비민주적이건, 그 어떤 사회도 집단지성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둘째, 현재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 선거·의회·정당 정치는 이제 효과가 제한된 19세기 발명품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관료·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이 그들의 전문성을 살려 정책 결정 과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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