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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는 예고편...R&D 회계처리 조사에 떠는 바이오업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항체 의약품으로 꼽히는 셀트리온의 램시마.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항체 의약품으로 꼽히는 셀트리온의 램시마.

금융감독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기준 위반 공개 파장이 바이오 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대장주’ 셀트리온을 위시한 바이오 주는 급락을 거듭하다 9일 반등했다. 금감원이 지난 1일 회계 기준 위반을 발표한 지 개장일 기준으로 닷새 만이다. 그럼에도 바이오주 관련 주가는 금감원 발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진 못하고 있다. 정부도 금감원에 따른 시장 혼란을 인정하고 있다.

금감원, 바이오 기업 연구개발비 자산 처리 테마감리중

제약ㆍ바이오주 주가 하락의 일차적인 원인은 금감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 회계 기준 위반 공개에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그 이면에 금감원의 연구개발비(R&D) 회계 처리 테마 감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연말, 금감원은 2018년 테마 감리 중 하나로 개발비 인식ㆍ평가의 적정성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개발비는 연구단계와 개발 단계의 구분이 명확지 않아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과도하게 자산으로 인식해 회계 처리에 자의성이 많이 존재한다"라며 “회계 처리 오류 가능성이 높아져 점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1월에는 제약ㆍ바이오 업종을 콕 찍어 테마 감리 대상으로 발표했다. 금감원이 구체적인 테마 감리 기업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업계에선 셀트리온 등 10개 제약ㆍ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테마 감리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삼바 이후 금감원의 칼날이 향할 것으로 보이는 제약ㆍ바이오 기업에 대한 주가 조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제약ㆍ바이오 업계, “회계 기준 따라 문제없어”

제약ㆍ바이오 업계는 금감원의 지적에 대해 “문제가 없다"라는 반응이다. 국제회계기준에 맞춰 연구개발비를 자산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채택한 국제회계기준(K-IFRS)은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6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 ▶자산을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미래 경제적 효과 등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기업마다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제약 기업들은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처리하는 반면, 신생 기업에 속하는 바이오 기업들은 자산으로 잡는다. 올해 초 내놓은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신약과 비슷한 약효를 내는 단백질 의약품인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셀트리온은 지난해 연구개발비(2270억 원)의 74.4%를 자산으로 잡았다.

자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 설리번

자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 설리번

반면 전통 제약사로 분류되는 유한양행은 연구개발비(1036억 원) 모두를 비용으로 처리했다. GC 녹십자도 연구개발비(1165억 원)의 자산 처리 비율이 17%에 불과했다. 서로 다른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해 셀트리온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끝난 신약이란 설계도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계도 없이 화학적 합성을 통해 개발하는 신약 개발과는 R&D 과정이 다르다"라며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산으로 잡는데 회계상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끝난 신약을 세포 배양 등 생물 처리를 통해 신약과 비슷한 약효를 갖게 만든 단백질 의약품을 말한다. 이와 달리 신약은 후보물질 등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든다. 서로 다른 제조 과정 탓에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신약은 일반적으로 임상 3상에 돌입할 단계에서 성공률이 1~3% 수준에 불과하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는 한국이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신약 개발을 주로 하는 글로벌 제약사의 회계기준을 그대로 들이대선 안된다”고 말했다. 연구개발비 테마 감리에 돌입한 금감원의 설명은 정반대다. 금감원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기업들의 경우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대부분 정부의 판매 승인 시점 이후의 지출만을 자산화한다"라며 “국내 기업의 경우 임상 1상 또는 임상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자산화하는 경우도 일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이오시밀러의 특수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감원의 연구개발비 테마 감리 결과에 따라 삼바 사태 이후 바이오 기업의 분식회계 논란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제약ㆍ바이오 업계, 개발비 축소에 따른 산업 위축 우려

업계에선 금감원의 테마 감리와 맞물린 개발비 축소와 이에 따른 산업 위축 우려가 나온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연구개발비를 상당 부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면 신약 관련 연구개발 위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는 신약 개발에 매년 수 조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국내에선 연구개발비 투자가 가장 많은 기업도 2000억 원 수준”이라며 “연구개발비의 비용 처리는 바이오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에도 반한다"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ㆍ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매년 상승세다. 국내 제약ㆍ바이오 상위 10개사의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1조 23억 원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2016년에는 상위 10개사의 연구개발비는 9730억 원이었다. 셀트리온의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2270억 원으로 조사됐다. 이어 한미약품(1706억 원), GC 녹십자(1165억 원), 대웅제약(1142억 원), 유한양행(1036억 원)이 연구개발에 1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혼란 최소화를 위해 정부가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 기준을 되도록 빨리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문호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는 기업별 기술 수준이나 경영 상태가 달라 일반화하기 어렵다”면서도 “금감원이 테마 감리를 시작한 만큼 회계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최대한 빨리 제시해야 시장 혼란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윤소라 아주대 경영대 교수는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는 학계에서도 뜨거운 감자”라며 “국제회계기준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판단에 맡겨두라는 게 기본 원칙”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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