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BIS 비율 조작해 외환은행 헐값에 넘겼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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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당시 금융감독 당국과 외환은행 경영진은 이 은행이 자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채권이 많았다며 그 근거로 국제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BIS 자기자본비율을 들었다. 따라서 당시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얼마였느냐는 이번 헐값 매각의혹의 핵심적인 관건이다. 만일 이 비율이 실제보다 낮게 조작됐다면 외환은행을 매각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어서, 이를 근거로 이뤄진 론스타의 인수 자체가 정당성을 잃게 된다. 더구나 이 같은 BIS 자기자본비율 조작이 외부의 사주를 받았거나 부정한 뇌물에 의해 이뤄졌다면 외환은행 매각은 세계 금융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사기극으로 판명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수사와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조작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매각자문사와 당시 외환은행 간부의 수상쩍은 돈거래가 그 개연성을 높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검찰과 감사원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핵심인 BIS 자기자본비율의 조작 여부와 그 배후를 밝혀내는 데 수사와 감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자가 이 과정에 간여했다면 어떤 이유로, 어떻게 개입했는지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다만 검찰과 감사원이 부당한 선입견이나 지나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국내외 금융계에서는 이번 론스타 수사가 외국계 펀드가 과도한 매각 차익을 얻고도 세금을 물리지 못한다는 데 대한 한국민의 정서적인 반감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수사는 매각과정의 위법성을 가려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