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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라면의 아버지 그가 왔다 … 안도 모모후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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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957년 갑자기 실업자가 된 그는 좌절 대신 꿈을 찾아 묵묵히 걸어갔다. 홀로 창고에서 1년 연구 끝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조리되는 신기한 국수를 만든 것이다. 그의 나이 마흔여덟의 일이었다. 96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는 그는 작년 골프장을 101번 찾았다. 건강 비결은 적게 먹는 것. 점심 메뉴는 늘 라면이다.

1957년 일본 오사카부(府) 이케다시(市). 이 지역 금융기관인 신용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던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는 큰 불운을 겪었다. 평생 다니던 직장이 갑자기 파산해 퇴직금 한푼 없이 쫓겨나게 된 것이다. 당시 47세로 재기하기 힘든 나이였지만 조용히 집에 돌아와 그가 시작한 일이 있다. 마당에 세 평 남짓한 창고를 짓고 밀가루 포대를 들여왔다. 평소 구상해 온 특별한 국수 면발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1년 넘는 연구 끝에 58년 그의'작품'이 완성됐다. 뜨거운 물에 면만 넣으면 2분 안에 조리되는 신기한 국수가 출시되면서 일본 열도가 떠들썩했다. 사람들은'마법의 음식'이라고 열광했고 제품은 나오자 마자 동이 났다. 이게 바로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치킨라면'의 탄생이었다.

'현대 라면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지금 종업원 1547명에 매출 2472억엔(약 1조9918억원)의 닛신(日淸)식품 회장이다. 올해 96번째 생일을 앞두고 11일 농심 주최로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라면총회 참석차 8일 한국을 찾았다. 노령인데도 지난 9일 아침 서울 근교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지난해 골프장을 찾은 회수가 101번 된다고 했다. "힘이 부쳐 보통 9홀만 도는데 요즘도 평균 50타 정도의 스코어를 낸다"고 자랑했다. 그의 건강 비결은 소식(小食)이다. 늘 80% 포만감만 느낄 정도로 식사를 한다. 등푸른 생선을 뼈째 씹어 먹는데 이 때문인지 충치가 거의 없다고 했다. 또 거의 매일 점심은 국 대신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내가 라면을 먹고도 건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소비자들이 믿지 않겠느냐"는 반문이다.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값은 35엔이었다. 당시 우동 한 그릇에 6엔이었으니까 상당히 비싼 음식이었다. 기계화 설비가 등장하면서 값이 떨어졌고 이제 라면은 해마다 전세계적으로 800억개가 소비되는 전 인류의 애호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평화는 배불리 먹을 때 찾아온다'는 그의 창업 이념이 실현된 것이다.

국내에선 1963년 삼양라면이 처음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었다. 요즘은 1위 업체인 농심을 비롯해 국내 업계 판매량이 한해 36억개에 달한다.

닛신식품은 일본내 컵라면 시장 49.4%, 봉지면 시장 24.6%를 점유한 업계 1위다. 산요(三洋)식품.도요(東洋)수산 등이 뒤를 따른다. 요즘은 아들이 회사를 경영하지만 지금도 중요한 결정은 모모후쿠 회장이 직접 한다. 신제품 개발이나 제품 리뉴얼 때 꼭 직접 맛을 본 뒤'OK'사인을 낸다. 그는 50여년간의 경영 노하우를 담은 '닛신맨 10원칙'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숙지하도록 한다. 그 중 가장 강조하는 게 '최초의 제품임에 자부심을 갖고, 늘 일등제품을 지향하라'는 것이다. 1971년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을 개발하고 지난해 우주비행사가 실제로 우주정거장에서 먹은 '스페이스 라무'에 도전했던 것 모두 그런 정신에서다.

그는 한국을 라면산업에 있어'특히 주목할 시장'이라 표현했다.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최고인데다 음식점에 인스턴트 라면 메뉴가 따로 있을 정도로 기호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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