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거꾸로 수싸움’ … 북한은 “용인” 미국선 “감축”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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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의 상징이었던 주한미군을 놓고 미국과 북한이 과거와는 입장이 반대되는 ‘거꾸로’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간 미국은 “주한미군은 아태 지역의 핵심축(linchpin)”이라고 못박아 왔다. 미군 철수는 꺼내지도 말라는 얘기다. 반면 북한은 “남조선에서 미군 철수를 선포하라”(2016년 7월 6일 노동신문)는 등 끊임없이 철수를 주장해 왔다.

북, 기존 철수 주장 접고 주둔 묵인 #평화협정 맺으면 중국에 공 넘어가 #일단 체제보장 확약받는 데 집중 #미 “한미동맹 핵심” 철수 일축해오다 #최근 비용 거론, 감축 카드 만지작 #방위비 분담 등 지렛대로 쓸 가능성

이런 익숙한 구도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주한미군 철수를 국시(國是)로 내걸었던 북한에선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이해한다”고 방북특사단에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북한은 비핵화를 위해)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청와대에선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다고 밝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5월 2일자 4면>

북한이 주한미군에 대해 유연한 대응을 할 듯한 조짐을 보이는 이유는 북·미 정상회담 때문이다. 북한은 북·미 관계가 급개선될 때 주한미군 거론을 피했다. 북·미 간 최대 해빙기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북이 검토됐던 2000년이다. 그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았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냉전 이후 우리 입장이 달라졌다. 미군은 이제 안정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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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의 수는 이것만은 아니라는 경계론도 여전하다. 미국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 주며 평화협정을 맺을 경우 주한미군의 성격은 바뀐다. 워싱턴과 평양에 각각 북한·미국대표부가 개설되는데 주한미군 지상군인 2사단이 휴전선을 뚫고 북진하고, 주한 미공군이 평양을 폭격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이 경우 북한이 입을 열지 않아도 중국이 나서서 주한미군이 주둔할 이유가 없다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큰 만큼 북한으로선 당장은 체제 보장을 확약받는 데 집중하되 주한미군 주둔 여부는 향후로 돌렸다는 분석이다. 신원식 전 합참 차장은 “북한은 현 국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고집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김일성·김정일 때 나왔던 주한미군 주둔 용인 발언은 완전 철수를 단시간에 이룰 수 없으니 그 전 단계로 먼저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 규모부터 축소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반면 주한미군을 한·미 동맹의 핵심으로 강조해 왔던 미국에선 지난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국방부에 주한미군 감축 검토를 지시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6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 기사를 놓고 펄쩍 뛰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주한미군 감축 검토를 부인했다. 그럼에도 미국 언론에 주한미군 감축 얘기가 등장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당장은 주한미군을 감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상대로 각종 양국 현안에서 미국의 입장을 관철하는 다목적 카드로 이를 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 한국을 안보무임승차국으로 간주하며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껌값”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엔 “우리는 무역에서 큰 적자를 보고 있는데도 그들(한국)을 보호하고 있다”며 “3만2000명의 미군 병력을 남북한 국경 지역에 두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는 말을 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무역 불균형 개선 등 경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주한미군을 카드로 쓰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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