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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작가 작품 해금에 담긴 뜻 |20여년 문학사공백 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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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19일 발표한 「월북문인의 해방이전 작품 공식해금조치」는 우선 20년대이후 해방에 이르는 20여년의 문학사 공백을 40여년만에 복원, 「총체적 문학사」를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는 지금까지 이미 실재했던 문학사상을 매장시켜 왔던 「정치적 기준」을 문학사적 영역에서 제거시킴으로써 우리민족 문학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전기가 됐다.
나아가 음악·미술등 다른 예술분야에 까지도 「정치적 기준」이 아닌 「문화적 기준」으로 부패문화사를 복원케하는 첫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이 조치는 궁극적으로 분단40년의 역사와 현실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기반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 3월31일 정부가 납북시인 정지용 김기림에 한해 1차해금을 단행한데 이어 취해진 이번 조치는 ▲지난 7월7일 노태우대롱령이 밝힌 「문화교류 개방원칙」에 따라 지금까지 학계 및 문단이 거듭 주장해온 내용을 수용한 것이며 ▲앞으로 남북한문화교류때 우리측이 먼저 문학사적 정통성을 확립함으로써 문화이념적 우위에 서겠다는 의지를 배경에 깔고 있다.
실제로 북한의 경우 지난 79년부터 83년까지 북한사회과학원문학연구소가 펴낸 『조선문학사』(전5권)는 고대문학에서 현대문학에 이르는 문학사 기술과정에서 남한이 중시하는 순수문학작가, 월북했으나 훗날 숙정된 작가들을 모두 제외해 문학사적 정통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 이번 해금조치의 배경은 정지용 김기림 해금을 전후로 걷잡을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적인 월북문인들의 작품집 출간붐을 막을 명분이 없어 출판정책의 부재현상을 빚고 있었다는 데서도 찾아진다.
그러나 월북이후 공산체제구축에 적극 협조했다는 이유로 홍명희 이기영 한설야 조영출 백인준등 대표적인 월북작가들이 이번 해금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이는 북한정권수립 이전인 해방전 발표한 그들의 작품들을 여전히 이념적 기준에 의해 규제한 것으로 다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따라서 제3차 해금에 이르는 지속적인 논란을 야기시킬것으로 보인다.
이 조치에 따라 문단 및 학계에서 제일 먼저 착수해야 할 작업은 새로운 문학사 기술이다. 새로운 문학사에 연임될 문학들은 ▲20년대이후 해방까지 민족주의 계열의 순수문학과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사회주의문학운동단체 「카프」계열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계급문학」 ▲단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장되었던 순수문학계열의 「모더니즘문학」등으로 대별된다.
계급문학이 우리문학사에서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제1차적 목적을 일제의 식민체제극복에 두고 「계급해방이 곧 민족해방」임을 문학적으로 추구했던 사회주의문학운동까지도 당연히 문학사속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학계의 논리로 뒷받침된다.
이에따라 ▲순수시 운동으로만 기술되었던 식민지시대 시문학사도 백석 이용악 오장환 임화 박팔양등 민족적 서정성과 집단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시 계열에 의해 보완되어야 하며 ▲또 거의 공백으로 남아 있었던 30년대 이후 소설문학사가 농민문학·노동자문학등 다양하고 수준높은 문학작품의 복원을 통해 채워져야 하고 ▲30년대말 비평의 최고수준에 도달했던 임화 김남천등의 사회주의문학비평이론이 복원되어야 하며 ▲일제하 문화통제수단의 초점이 되어 신파극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희곡사 역시 송영 함세덕등의 희곡을 통해 수정되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소설문학사의 경우 농민소설의 개척자인 이기영, 노동자소설의 선구자인 한설야,『임거정』등을 통해 민중적 사실주의를 주창한 홍명희등 대표적 월북작가들이 해금에서 누락됐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최근 학계에서 활발히 일고 있는 월북문인들에 대한 작가론·작품론및 문학사 연구에 결정적인 전기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 조치를 계기로 우리사회는 이념적으로 대립되는 체제의 문화까지도 폭넓게 감싸안아 분석· 비판할 수 있는「입지」를 확보, 분단현실의 극복을 위한 건강한 토대를 갖추게 됐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씨(서울대교수)는 『이미 사회주의문학을 비판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문단 및 학계가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 대표적 월북작가 5인이 해금에서 제외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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